사회 사회일반

성희롱 공포에 택시 타기 무서워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1.17 17:12

수정 2018.01.17 21:57

결혼했느냐… 번호 주면 내려줄게… 눈 오는데 좋은 데 갈까…
신고해도 범칙금에 그쳐.. 성희롱 예방교육 강화 필요
해외선 여성전용택시 등장.. 국내도 고급택시 인기 끌어
성희롱 공포에 택시 타기 무서워요

"택시기사 아저씨가 결혼했느냐고 묻길래 '남편 죽었다'고 했다. 끝내주는 침묵이 계속 되는 중"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한 여성이 이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다. 택시기사의 사적인 질문이 불편해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는 이 글은 1만7000여명이 공유할 정도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토록 상당수 여성들은 일부 택시기사들의 '막말' 때문에 택시를 타는게 겁이 난다고 토로한다.

■반말.욕설은 기본… 성희롱.여성혐오 발언도

직장인 A씨는 택시를 탈 때마다 수시로 택시기사의 막말과 성희롱에 시달렸다.
택시기사로부터 반말과 욕설에 나이, 직업, 결혼 유무는 물론이고 "남친이랑 속궁합은 좋아?" "여자가 잘 해야 남자가 바람을 안 피워" 등 성희롱성 발언을 들었다는 것이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적도 있다. A씨는 한 기사로부터 "아가씨 마음에 드니까 전화번호 좀 알려줘봐. 번호 주면 내려줄게"라는 말에 뒷자리만 살짝 바꾼 번호를 알려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한 기사는 "오빠가 밤에 늦게 모셔다 드렸으니 잔돈 3000원은 거슬러 주지 않겠다"면서 거스름돈을 주지 않았다.

이런 일을 겪은 것은 A씨만이 아니다. 직장인 B씨는 한 기사가 "눈 오는데 아저씨랑 좋은 데 가서 눈 구경할까?"라고 말해 납치라도 당할까봐 불안에 떨어야 했다. 60대 이상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기사로부터 "나 정력 좋아. 내 애인 할래?" 같은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다른 여성들도 "여자가 늦은 시간에 왜 돌아다니냐" "첫 손님부터 여자라니 재수없네" "여자들은 정치 몰라서 큰일이야" 등 여성혐오적 발언을 접했으며 손님의 몸을 계속 훑어본다거나 가까운 길을 일부러 멀리 돌아가는 일도 흔하다고 털어놨다.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그저 막연한 게 아니다. 한 40대 택시기사가 밤늦게 택시에 탄 여성 손님을 인적 드문 공사장으로 데려가 흉기로 위협, 성추행하고 금품을 뺏은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등 실제 택시에서 각종 범죄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신고 방법도 마땅치 않다 보니 여성들은 목적지까지 기사들 기분을 적당히 맞춰주는 수 밖에 없다.

■"성범죄 예방교육 강화해야"

해외에서는 여성 전용 택시도 등장했다. 브라질에서는 운전기사도, 승객도 모두 여성인 '페미 택시'가 인기다. 우버의 가장 큰 시장이기도 한 브라질에서 기존의 차량 공유 업체들이 보안에 집중할 때 신생기업들이 여성 안전을 주목한 것이다. 두바이에도 이와 비슷한 개념의 핑크색 여성전용택시가 운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전용 택시가 생소한 개념이어서 많은 여성들이 카카오택시 앱을 활용하고 있다. 카카오택시는 택시를 호출할 때부터 미리 출발지, 목적지를 입력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고 승객이 택시기사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어 신뢰를 얻고 있다. 카카오는 카카오택시 성공을 계기로 '고급택시 서비스'(카카오택시 블랙)를 내놓아 20~30대 젊은 여성 승객의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카카오택시를 이용할 수만은 없어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여성계의 지적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 최원진 활동가는 "택시는 20~30대 여성이 중년 남성과 1대 1로 독대하는 거의 유일한 공간인 만큼 우리 사회가 젊은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 잘 드러난다"며 "다산콜센터 등에 신고해도 범칙금에 그쳐 처벌 강화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성희롱 예방교육 강화를 통한 기사들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노선이 활동가는 "택시라는 공간에서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기사가 절대적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손님이 기분 나쁜 티를 내면 본인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민원이 제기된 기사들에 대해 택시회사들이 어떤 징계를 하는지 알 수 없어 이에 대한 관계당국과 언론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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