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가상화폐' 7천만원이 1천만원으로..“분노, 우울에 잠 설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2.11 14:10

수정 2018.02.11 14:10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1일 서울 한 주택에서 가상화폐에 1000만원 가량을 투자했다가 실패한 것으로 추정되는 30대 회사원이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은 달 31일에는 부산에서 20대가 같은 이유로 우울증을 겪다 방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심리 전문가들은 “투자 실패로 인해 무기력과 우울증, 분노감이 일어나 자살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정신질환을 앓는 가상화폐 투자자가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가상화폐 가치가 연일 폭락하면서 극심한 우울 증세나 투자 중독 현상을 호소하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대개 투자 경험이 많지 않아 감정을 잘 통제하지 못하는데다 ‘일확천금을 노린 도박꾼’이라는 부정적 인식으로 홀로 고립돼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세계'가 '쪽박'으로..하루 종일 휴대폰 어플만
11일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등에 따르면 비트코인 시세는 지난달 6일 2500만원을 돌파했다가 이달 6일 600만원대로 폭락했다. 리플, 이더리움 등 다른 가상화폐도 마찬가지다. 특히 1월 초 가상화폐 광풍 속에 처음 입문한 투자자들은 한달여만에 원금의 70~80%까지 잃었다. 이로 인해 ‘비트코인 블루(우울증)’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20년간 오토바이 판매 센터를 운영한 박승기씨(가명·48)는 투자 실패로 치미는 분노감과 우울 증세를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박씨는 지난해 12월 주변의 권유로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가 1000만원이 보름동안에 3400만원으로 불어나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박씨는 최근 오토바이 가게를 팔아 6000만원 가량을 다시 투자했다. 그러나 정부의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시사 등으로 가상화폐 가치는 급락했다. 박씨의 투자금은 현재 1300만원대로 줄었다.

박승기씨(가명)는 코인 투자 초기 보름 만에 2400만원 가량을 벌었으나 지금은 7000만원 가량을 투자해 약 1300만원만 수중에 남았다. 그는 극도의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박씨 제공
박승기씨(가명)는 코인 투자 초기 보름 만에 2400만원 가량을 벌었으나 지금은 7000만원 가량을 투자해 약 1300만원만 수중에 남았다. 그는 극도의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박씨 제공

투자 실패는 그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채 휴대폰 속 가상화폐 어플리케이션만 들여다보고 있다. 괴로울 때면 밤마다 술을 마신다. 그는 “아침 9시 일어나 2시간 간격으로 코인 시세를 살피고 있다. 새벽에는 코인 가격이 떨어지는 꿈을 꿔 잠을 설친다"고 전했다. 그는 주변에 투자 실패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정부가 가상화폐 규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갑자기 분노가 치밀기도 하고 ‘0원이 되면 어쩌지’라는 불안에 무기력과 우울증이 지속된다고 설명했다.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노모씨(28)는 1년 간 과외를 하면서 모은 500만원을 1월 초 리플에 투자했다. 현재 가치는 200만원이 채 안 된다. 노씨는 “처음 투자할 때 묻어두는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돈을 잃으니 독서실에서도 휴대폰 속 가상화폐 시세차트만 쳐다보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올 9월 (시험에) 또 떨어지면 무슨 희망이 있을까 막막하다”며 “부모님이나 친구에게도 좋지 않은 말만 들을까 입을 닫은 지 오래”라고 덧붙였다.

심리학 전문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투자자들의 정신적 질환 악화가 우려된다며 심한 경우 주변 도움이나 치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가상화폐가 매일 급락하는 상황에서 원금을 찾기 위해 투자에 몰두하고 돈을 잃을 수 있다는 위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진다면 중독증상을 의심해봐야 한다”며 “가상화폐에만 몰두해 대인관계에서 외톨이가 되면서 우울감과 무기력감으로 발전돼 극단적 선택까지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임 교수는 친인척 등의 도움을 강조했다. 사회적으로 가상화폐 투자에 대해 투기라고 하는 현실 때문에 대부분 대인관계에서 고립상태를 겪고 질환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위에서 도움을 주거나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중독 현상 심각, 자살예방기관 '우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매일 가격이 크게 변동하는 가상화폐 특성으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대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가격이 올랐다가 내리는 변화가 하루종일 이어지면서 투자자들에게 희망고문처럼 작용하고 있다”며 “하루 종일 휴대폰 속 코인 시세만 보고 있는 중독 현상도 이같은 요인”이라고 말했다. 투자에서 목표설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실패감에 빠져만 있을 게 아니라 예를 들어 ‘원금의 반만 회복하면 털고 나온다’는 등 목표 설정을 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투자 중독을 이겨내지 못해 일상적 생활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자살예방기관은 가상화폐 투자자 사이에 ‘모방자살’ 현상이 발생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는 지난 6일 투자자 자살 상담 문의를 받았다.
센터 관계자는 “가상화폐 관련 상담이 들어오면 직원들에게 즉각 보고하고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공지했다”고 밝혔다. 중앙자살예방센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자살 글’ 관련 온라인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센터 관계자는 “가상화폐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겠다는 글은 아직 많지 않지만 자살을 모방하는 현상이 발생할까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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