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일본은 끝났다고 말하면 안돼"
대일 강경메시지 발표
위안부 합의 '피해자 중심주의' 전면에 내세워
북풍을 정권 지지기반으로 삼은 아베정부 입지 좁아질 듯
대일 강경메시지 발표
위안부 합의 '피해자 중심주의' 전면에 내세워
북풍을 정권 지지기반으로 삼은 아베정부 입지 좁아질 듯
"가해자 일본은 끝났다고 말하지 말라"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2년차 첫 3.1절 대일 메시지는 짧지만 강경했다.
일본을 '가해자'로 지칭하고, 국가간 그 어떤 합의가 있었더라도 '피해자'가 끝났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끝난게 아니라는 소위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한·일 관계의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앞서 지난달 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의에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엔 피해자 중심주의가 결여돼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제 침략의 상징인 서대문형무소를 3.1절 기념 행사장으로 정하고, 대통령 내외가 한복 차림으로 시민들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3.1운동을 재연한 건 메시지 이상의 메시지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일본의 침략 역사는 끝난 게 아니며, 여전히 살아있는 역사라는 점을 주지시키기에 충분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이번 3.1절을 앞두고 박제화한 행사는 하지 마라, 생동감 있고, 현장에 들어가며 국민이 동참할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하라고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이같은 입장은 한·일 관계 개선에 조급하게 나서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최근 남북관계 및 북미 대화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간 한반도 위기와 북핵 리스크를 정권의 지지기반으로 십분활용해 온 아베 정권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의 때 정부는 북핵문제 공조를 위해 과거사 문제는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기조를 내세웠다. 올 초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처리에 대한 최종 정부안이 나왔을 때도 '파기'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도 양국관계 마지막 파국은 막아보겠다는 기류가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바뀐건 남북이 대화 채널을 확보하면서부터다. 정부가 한반도 문제 당사자로서 자신감을 확보한 점, 그간 한·미·일간 공조체제 구축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보여준 일련의 비신사적 태도, 여전히 한반도 위기상황을 정권의 지지기반으로 삼으려는 아베 정권의 스탠스 등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켜켜이 쌓인 결과로 분석된다.
특히, 지난달 9일 평창올림픽 개회식 직전 열린 정상회담에선 아베 총리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할 단계가 아니다"는 발언을 내놓자 문 대통령이 내정간섭이라고 일침을 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내용이 회담 후 이틀 뒤 뒤늦게 전격 공개된 데 대해 "일본 측 태도를 본 문 대통령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는 게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전언이다. 회담 직후 일본 언론들은 일본 관리들의 발언을 인용해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의 대피와 안전확보에 대해 양국 정상이 연대하기로 했다는 둥 소녀상 철거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청와대와 외교부 등은 일본에 끌려다닐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외교당국의 고위관계자는 "북핵문제에 있어 일본은 미국 내 강경파들과 궤를 함께하고 있다"며 "실제 회담에 돌입했을 때 일본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북핵 관련 회담이 열리게 될 경우, 정부는 일본을 끼워줄지 말지에 대한 카드를 쥐게 된다. 한.일 관계 주도권이 문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이다. 단, 북한 문제가 대화국면으로 흘러갈 때 얘기다.
"일본에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답게 진실한 반성과 화해 위에서 함께 미래로 나아가길 바랄 뿐"이라는 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발언은 이런 상황을 압축적으로 대변해 주는 것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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