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숙종이 사랑한 경희궁 '춘화정 반월석조'가 아파트 미술관으로?

정용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3.20 08:40

수정 2018.03.20 10:26

성곡미술관 매각과 함께 자연스럽게 넘어간 ‘반월석조’
수익사업에 밀려 유물 보존 여부 가늠 어려워
“소유권은 존중하되 유물 이전 검토해야”
▲ 옛 경희궁역 내 춘화정 자리에 있는 성곡미술관이 소장중인 '반월형 석조연못'의 모습. 석조 안 노란 부분은 물때가 껴 변색된 흔적. /사진=서울역사박물관 제공
▲ 옛 경희궁역 내 춘화정 자리에 있는 성곡미술관이 소장중인 '반월형 석조연못'의 모습. 석조 안 노란 부분은 물때가 껴 변색된 흔적. /사진=서울역사박물관 제공
▲ 가로폭 150cm에 이르는 대형 화강암 통돌을 안팎으로 가공해 만든 반월형 석조연못의 모습. 안쪽에는 두 마리 잉어가 여의주를 바라보고, 연지 상단 테두리에는 세 마리의 서수를 조각했다./사진=서울역사박물관 제공
▲ 가로폭 150cm에 이르는 대형 화강암 통돌을 안팎으로 가공해 만든 반월형 석조연못의 모습. 안쪽에는 두 마리 잉어가 여의주를 바라보고, 연지 상단 테두리에는 세 마리의 서수를 조각했다./사진=서울역사박물관 제공
누각 위의 봄바람이 좋아
섬돌 가에 반달같은 연못 있네.
앉아 물고기 뛰어 노는 곳을 보네
조용히 려천(戾天) 시를 읊네.
「춘화정에서 반달연옷을 바라보며(在春和亭臨半輪池)」숙종(궁궐지 중)

이 시는 조선 제19대 왕 숙종이 경희궁 춘화정에서 반달연못을 바라보며 지은 시다. 숙종과 영조는 경희궁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세워진 정자 춘화정을 즐겨 찾았다. 멀리 관악산을 보거나 꽃을 구경하는 왕의 휴식처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숙종이 노래했던 ‘춘화정 반월형 석조연못’(이하 반월석조)을 자유로이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현재 반월석조는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성곡미술관에서 소장 중이지만 지난해 미국계 투자기관으로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유물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20일 주요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해 말 미국계 투자기관이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1-101에 있는 성곡미술문화재단의 성곡미술관을 매입했다. 투자기관은 토지면적 8389㎡의 땅에 100여 가구의 고급 아파트를 재건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말 일반에 분양하고 입주는 오는 2021년께로 예정되는 등 재건축 계획이 상세히 잡혀 있다.

성곡미술문화재단은 토지비의 일부를 주거단지 내부에 설립될 미술관으로 받는 것을 매각 조건으로 내걸었으며 투자 기관은 지하 4층~지상 10층 이상의 주거 공간 중 지하 1층~지상 1층을 미술관으로 활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 (위) 서궐도안(西闕圖案)에 그려진 춘화정과 반월형 석조연못의 모습. (아래) 현재 지도의 경희궁 권역 표시. 성곡미술관은 춘화정 터에 자리한다. /사진=서울역사박물관 제공
▲ (위) 서궐도안(西闕圖案)에 그려진 춘화정과 반월형 석조연못의 모습. (아래) 현재 지도의 경희궁 권역 표시. 성곡미술관은 춘화정 터에 자리한다. /사진=서울역사박물관 제공
그러나 성곡미술관의 규모를 볼 때 소장한 야외 조각품과 동양화·서양화·조각·판화 등의 미술품을 모두 수용하기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부피가 큰 반월석조의 경우 야외 공간에 전시되더라도 사유지인 아파트의 특성상 서울 시민들이 자유롭게 반월석조를 찾아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때문에 역사적 사료가 충분한 조선 궁궐의 유물이 아파트 주민을 비롯한 일부 소수를 위한 전시물로 제한되는 것 아니냐는게 문화계의 우려다.

서울역사박물관 관계자는 "문화재는 원래 그 자리에 보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며 "성곡미술관 터가 옛 경희궁의 춘화정과 반월석조가 있던 자리이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지금처럼 일반인 관람이 자유로워야 하는데 아파트가 들어설 경우 그 공공성이 얼마나 유지될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학계 일각에서는 비록 유물이 사유재산 테두리 안에 있지만 공공재의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소유권에 대한 권리는 존중하되, 최대한 공공성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지연 대전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반월석조는) 현재 경희궁에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유물"이라며 "그나마도 여기저기 흩어진 상태인데, 이마저도 볼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개발계획에 따라 현재 위치에 전시할 수 있는 여건이 어렵다면, 소유권은 그대로 둔 채 유물만이라도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이전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성곡미술관 측은 부지 개발계획과 전시품 유지에 대해 "현재 결정한 바가 없어 답하기 어렵다"며 밝혔다.

한편 반월석조는 조선 5대 궁궐 중 하나인 경희궁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유물로 예술성과 역사성이 충분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민규 간송미술관 연구원이 작성한 반월석조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반월석조는 1704년 건립된 경희궁역의 정자 춘화정 앞에 있던 ‘반월형 연지’로 가로폭 150cm에 이르는 대형 화강암 통돌(全石)을 안팎으로 가공했다.

안쪽에는 두 마리 잉어가 여의주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조각하고 연지 상단 테두리에는 세 마리의 서수(瑞獸)를 조각했다. 서수상 아래에는 구름 형태의 모란문이 조각되어 있다. 서수의 자세와 표현방법, 문양과 조각 기법을 통해 춘화정이 건립된 1707년 경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반월석조가 경희궁의 유물임이 밝혀진 건 최근의 일이다. 2015년 서울역사박물관이 경희궁의 흔적을 찾아 한자리에 모은 전시 '경희궁은 살아있다' 준비 과정에서 경희궁의 유물임이 밝혀졌다.


당시 전시기획을 맡았던 정수인 학예사는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유구을 찾아 옛 경희궁 지역을 수 차례 다녔고, 결국 성곡미술관에 보관 중이던 반월석조가 서궐도(보물 제1534호) 안에 그려진 유물 임을 입증했다.

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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