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성차별 있을 수 없어 피의자 특정돼 빨리 검거"
홍익대 누드크로키 수업에서 남성 모델 사진을 몰래 찍어 유출한 혐의를 받는 동료 여성 모델이 구속되자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이례적으로 수사가 신속히 이뤄진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여성이 불법촬영(몰카) 피해자일 때는 수사 의지도 제대로 보이지 않더니 남성이 피해자여서 다른 태도를 보인다는 게 불만의 요지다. 관련해 청와대 청원에 동의한 시민도 며칠만에 35만명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경찰 수사에 성 차별은 있을 수 없다며 이같은 비판의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법촬영물 신고하려면 '못 잡아요'"
16일 온라인성폭력에 대응하는 단체인 디지털성범죄아웃(DSO) 하예나 대표는 실제 경찰이 음란물 유포 사건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은 사례가 많다고 주장했다.
하 대표는 "한 몰카 영상의 경우 가해 남성의 얼굴 전체와 목소리가 나오는데다 촬영 장소를 알 수 있는데도 경찰은 수사가 어렵다고 했다"며 "신고해도 수사가 지지부진한 경우가 많고 10건 중 3건 정도만 범인이 검거되는데 홍대 몰카건은 1주일 만에 검거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홍익대 몰카 촬영자는 구속까지 됐는데 다른 사례와 비교하면 온도차를 실감했다"며 "한때 연인이었던 한 남성은 과거 촬영한 영상을 유포한다면서 피해 여성을 협박하고 직장에 찾아가 행패를 부리는 등 증거인멸 우려에도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몰카로 피해를 입었다는 한 여대생은 최근 페이스북 서강대 대나무숲 페이지에 "인터넷에 내 동영상이 돌아다니고 용의자도 1명인데 조사를 해주지 않았다"며 "처벌 못 한다고, 우리나라 법이 그렇다더니 이번에는 왜 일사천리인가"라는 글을 올렸다.
여성 네티즌들은 불법촬영물 등을 신고하려 할 때마다 경찰이 '그거 못 잡아요' '처벌 못해요' 등 말을 했다고 비판하며 '#동일범죄동일처벌', '#유O무죄_무O유죄' 등의 해시태그를 내걸고 있다. 이들은 19일 대학로에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를 연다.
■"성별 문제 아니다"… "공정한 법집행 촉구"
경찰은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으로 불거진 '성차별적 수사' 논란에 피의자 성별 등에 따른 수사 차별이나 불공정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홍대 누드모델 몰카사건은 범행 장소와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 등을 특정할 수 있어 수사가 빨리 가능했다"며 "피의자 성별에 따라 수사속도를 달리 하거나 불공정하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특히 여성과 관련된 수사나 성범죄는 경찰이 각별히 신경 쓴다"고 말했다.
한남대 경찰학과 박미랑 교수는 "이번 사건을 두고 감정적인 성별 대결로 가는 양상을 보이는데 많은 범죄에서 여성이 가해자일 때 남성보다 관대한 처벌을 받은 경향이 있고 이는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이번 논란은 성별 관계 없이 동등한 처벌, 적법한 절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여성들 비판이 나오게 된 배경을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대 심리범죄학과 이수정 교수는 "이번 사건은 언론에서 보도해 수사가 빨라졌고 피의자가 특정돼 빨리 검거한 것도 맞다"면서도 "다만 경찰이 몰카 범죄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 비판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내가 신고했을 때 빨리 검거 안 하더니 왜 이 건만 빨리 하나' 같은 불만 제기는 어쩔 수 없고 이런 비난이 근거가 없다고도 못한다"고 덧붙였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동안 사법체계에서 몰카를 경미한 범죄로 다룬 경향이 있기 때문에 여성들 불만이 나온 배경을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업무상 위력 추행 혐의 등을 받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경우 유사하게 증거인멸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속되지 않았나. 우리 사회가 공정한 법 집행을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전했다.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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