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신 대법관)은 17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권모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형사처벌 대상인가?..엇갈린 1·2심 판단
권씨는 2014년 8월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상가를 황모씨와 박모씨에게 13억8000만원에 배도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 2억원과 중도금 6억원, 총 8억원을 받았다. 그러나 기존 임차인이 계약갱신을 요구하면서 상가를 넘겨주지 않았고, 결국 권씨가 소송을 제기해 황씨 등과의 잔금 지급과 소유권이전등기절차가 미뤄졌다.
황씨 등은 상가 인도가 지연됨에 따라 권씨에 손해금액을 지급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권씨는 결국 2015년 4월 황씨 등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고, 같은 달 다른 사람에게 상가를 15억원에 팔았다.
검찰은 권씨의 이런 행위를 부동산 이중매매(부동산을 팔고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해주기 전 다른 사람에게 또 다시 파는 행위)로 보고 배임 혐의를 적용, 재판에 넘겼다.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성립하는 범죄다.
하급심(1·2심)에서는 판단이 엇갈렸다. 쟁점은 매도인을 범죄 성립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처리하는 자'로 볼 수 있는지다. 권씨 측은 "매도인 매매계약에 의해 부담하는 소유권이전등기의무는 자기 사무일 뿐 타인의 사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매매 목적물이 부동산인 경우 특별한 없는 한 임의로 계약을 해제할 수 없을 때에는 매도인은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지하는 자' 지위에 있다"면서 "이러한 지위에 있는 자가 목적물을 제3자에게 처분함으로써 잔금 수령과 상환으로 소유권이전등기절차 이행이 불가능해졌다면 배임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계약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해야 할 채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기의 사무'에 해당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매도인이 목적물을 매수인이 아닌 타인에 처분했더더라도 형법상 배임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무죄 부분에 대해 상고하면서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공개변론까지 열어 양측 간의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다.
■다수의견 "부동산 이중매매는 배임죄, 기존 판례 타당"
대법관 8명은 "부동산 이중매매에 대해 배임죄 성립을 인정하는 기존의 판례는 여전히 타당하므로 유지돼야 한다"며 다수의견을 냈다.
대법원은 "어떤 형태의 신뢰위반행위를 가벌적인 임무위배해위로 볼 것인지는 계약의 내용, 이행의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규범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매수인은 매도인이 소유권을 이전해 주리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중도금을 지급하는 데, 이 단계에 매도인은 매수인의 재산적 이익을 보호·관리할 신임관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판례가 부동산 거래의 혼란을 일으키거나 매도인의 계약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김창석, 김신, 조희대, 권순일, 박정화 대법관은 "부동산 매도인의 소유권이전의무는 '자기의 사무'일뿐 '매수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또 개인간 사적인 거래계약에 대해서는 민사상 채무불이행의 문제로 처리하면 될 것을 형사상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허무는 것으로 판단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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