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다시 불붙은 사형제 존폐 논란 ″생명권 보장″ ″흉악범 필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20 14:25

수정 2018.06.20 14:48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사형제 폐지 찬성vs반대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가 사형제 폐지를 추진하고, 청와대도 이를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사형제가 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생명권이 우선'을 내세워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사형 집행으로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는 등 사형제 존폐를 놓고 찬반 양론이 가열되고 있다.

20일 정부와 인권위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 1997년부터 21년째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현재 장기 사형수는 61명이다. 연쇄살인을 저질렀던 강호순, 유영철 등이 대표적이다.
여중생을 살해하고 강원도의 야산에 유기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도 지난 2월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사형제 폐지 기대 ‘최고조’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로 분류되면서 인권위는 문재인 대통령이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사형제 모라토리엄(유예)을 선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제 사회에서는 사형제 유예 선언을 폐지 직전 단계로 보고 있다. 장예정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는 “모라토리엄 선언은 더 이상 사형집행을 하지 않겠다는 국제적인 약속과 같다”고 했다.

인권시민단체나 종교계에서는 사형제 폐지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이들은 사형제 폐지의 근거로 생명권 보장을 든다. 누구도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과거 사형제 반대 의견을 보인데다 최근 생명권을 존중하는 사회적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처벌만을 강조하지 말고 피해자 구제 방향으로 논의의 초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장 활동가는 “현재는 가해자를 어떤 방식으로 형사 처벌할 것인가에 이목이 쏠려 있지만 피해자 구제가 더 시급한 문제”라며 “생명권을 빼앗는 사형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사형제가 과거 정권의 입맛에 따라 ‘살인 도구’처럼 악용돼 온 점도 비판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사법부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해 사형 선고를 한 지 20시간 만에 집행해 ‘사법살인’으로 지적돼 왔다.

오영중 서울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은 “법원의 판단이 항상 옳을 수 없고, 시대에 따라 정권마다 판결이 뒤집힐 수 있다는 걸 역사를 통해 배워왔다”며 "또한 사형제가 범죄 예방 효과가 있다는 객관적인 연구가 없는 상황에서 사형제도는 사법부를 통한 합법 살인이란 점에서 매우 비윤리적 제도”라고 했다.

사형제 폐지는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사형제 폐지가 가입조건 중 하나이며, 국제 사회에선 인권 국가를 평가하는 하나의 척도로 여겨진다. 인권을 중시하는 현 정부에서 사형제 폐지에 대한 기대가 큰 이유다. 국제인권단체 엠네스티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사형제를 시행하지 않는 나라는 110개국에 달했다. 우리나라처럼 사형제도가 있지만 10년 이상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의 폐지국인 곳도 32개국에 이른다. 사형을 집행하는 나라는 59개국이다.

사형제 폐지는 세계적인 추세기도 하다. 연합뉴스
사형제 폐지는 세계적인 추세기도 하다. 연합뉴스

■국민 여론은 사형제 존치 ‘우세’

반대로 국민 여론은 사형제 존치가 우세한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5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사형제 폐지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9.6%로 10명 중 1명이 채 되지 않았다. 반면 사형 집행에 찬성한 비율은 52.8%에 달했다.

특히 사회적 공분을 사는 범죄자가 검거될 때면 사형 집행을 요구하는 여론은 더욱 치솟는다. 지난 2월 이영학 재판에 참석한 피해 여중생의 아버지는 재판부에 “사형 판결뿐 아니라 집행까지 반드시 해달라”고 호소했다. 재판부는 “준엄한 법과 정의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우리사회로부터 격리하기 위해 사형을 선고한다”며 사회 정의를 언급했다.

지난 2월 1심 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이영학의 모습. 이영학은 여중생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당시 일부 국민들은 이영학에게 사형 선고는 물론 집행을 요구하기도 했다. 사진=FNDB
지난 2월 1심 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이영학의 모습. 이영학은 여중생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당시 일부 국민들은 이영학에게 사형 선고는 물론 집행을 요구하기도 했다. 사진=FNDB
현재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문재인 정권을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사형제 만큼은 ‘필벌(必罰)’ ‘정의’ 등 처벌을 강조하며 집행을 요구하는 글이 수백 건이 올라와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권 의식이 크게 성장했음에도 국민들이 사형제 폐지에 반대하는 것은 ‘흉악 범죄를 저지르고도 낮은 형량을 받고 있다’는 등 사법 정의에 대한 불신을 뜻할 수 있다”며 “사형제 폐지 관련해 여론을 수렴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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