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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믈리에' 자격시험, 직접 쳐보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23 11:43

수정 2018.07.23 11:43

와인보다 감별 어렵고 세계사까지... 난이도 '극악'
'치킨의 미래는 당신에게 있습니다'. 서울 올림픽로 롯데호텔월드 3층에서 열린 '제2회 치믈리에 자격시험' 현장을 500명의 참가자가 꽉 채웠다.
'치킨의 미래는 당신에게 있습니다'. 서울 올림픽로 롯데호텔월드 3층에서 열린 '제2회 치믈리에 자격시험' 현장을 500명의 참가자가 꽉 채웠다.


‘다음은 매장에서 치킨을 튀기는 소리다. 잘 듣고 치킨을 몇조각 튀겼는지 맞히시오.’
듣기평가 2번 문제다. 기름끓는 소리와 치킨이 빠지는 소리를 구분해야 한다. '텀벙' 소리가 날때마다 수험생들이 숨을 죽였다. 다음 문제는 외국인 2명의 영어대화다.
어떤 것을 시켰는지 이해하면 된다. 치믈리에는 '치킨계에서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네이버 오픈사전)'란다. 이 경지에 도달하려면 영어실력 정도는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수험생들의 한숨이 터져나왔다.

치믈리에 자격시험장은 축제의 장이었다. 한국에 살고 있는 미국인 블로거가 시험장에 나온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치믈리에 자격시험장은 축제의 장이었다. 한국에 살고 있는 미국인 블로거가 시험장에 나온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지난 22일 서울 올림픽로 롯데호텔월드 3층 크리스털 볼룸에서 열린 ‘제2회 치믈리에 자격시험’ 현장이다. 오후 2시에 시작되는 시험장엔 500명이 넘는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1시간 동안 필기 30문제와 실기 10문제 등 총 40문제를 풀어야 한다.

치믈리에 자격시험에 참가한 수험생이 답안지에 개인정보를 표기하고 있다.
치믈리에 자격시험에 참가한 수험생이 답안지에 개인정보를 표기하고 있다.


■‘치킨 세계사’정도는 알아야
문제 4번. ‘다음중 '치믈리에'의 설명으로 옳은 것을 고르시오.‘ 이정도는 예상했던 바다. 긴장이 풀렸다. 하지만 더이상 웃지 못했다. 문제 5번. '아래 설명에 해당하는 치킨 브랜드의 이름을 고르시오' "처가를 방문한 사위에게 암탉을 요리하여 주던 어머님의 사랑은...(중략)". 답은 당연히 처갓집 양념치킨이겠지. 하지만 보기가 만만치 않다. 보기 1번은 장모님 치킨. 어제 예습한 '치슐랭 가이드'에도 나왔던 브랜드다. 보기 2번은 이서방 치킨. 처갓집 양념치킨은 5번이다. 3번과 4번보기(맘스터치, 만석닭강정)는 제외하더라도 만만치 않았다. 처갓집은 함정이 아닐까 싶어 장모님 치킨을 찍었다. 그래서 틀렸다. 처음 찍은 답은 바꾸지 말라는 불변의 진리를 새삼 다시 체감했다.

듣기평가 세 문제가 포함된 실기 시험은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방불케 했다. 58만명이 치믈리에 자격시험 사전 예비고사에 응시했다. 수능시험 응시자보다 치킨 시험 응시자가 더 많았다.
듣기평가 세 문제가 포함된 실기 시험은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방불케 했다. 58만명이 치믈리에 자격시험 사전 예비고사에 응시했다. 수능시험 응시자보다 치킨 시험 응시자가 더 많았다.

문제 13번. ‘다음중 '페리카나 마늘치킨'을 고르시오’. 4컷의 사진이 보인다. 거의 틀린그림 찾기 수준이다. 알아도 틀릴 판이다. 내가 익숙한 치킨뱅이 마늘치킨은 나오지 않았다. 당혹스러운건 12번 문제다. ‘후라이드 치킨 탄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치킨을 무려 세계사와 접목시켰다. 닭도 잘 모르지만 닭만 알아서는 풀 수 없다. 일본에 정착한 네덜란드 상인.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의 원주민. 미국 농장에 거주한 아프리카 노예.... 그 어느 보기도 치킨과 연관이 없어 보인다.

’다음 중 굽네치킨 광고에 출연하지 않은 모델을 고르시오.‘ 기자가 아는 유일한 광고 모델은 소녀시대다. 굽네치킨 달력에 나왔던 소녀시대는 아예 보기에 없었다. 그야말로 치킨의 국내외 역사를 꿰야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요즘 대기업 공채시험도 역사가 필수라던데 치킨계에도 이 경향이 퍼진 모양이다.

치믈리에 자격시험 실기영역. 10조각의 치킨을 감별해 문제에서 알맞는 보기를 골라야 한다.
치믈리에 자격시험 실기영역. 10조각의 치킨을 감별해 문제에서 알맞는 보기를 골라야 한다.

■와인보다 어려운 치킨 감별
실기 시험은 후라이드치킨·텐더치킨·양념치킨·간장치킨 등 4가지 영역, 재료를 감별하는 재료영역까지 총 5가지 유형이다. 10가지 치킨을 직접 맛보고 보기에서 고르면 된다. 난이도는 필기시험과는 차원이 다르다. 5지선다가 아닌 8지선다다.

경건한 마음으로 심호흡을 했다. 와인을 구별할때처럼 보고, 맡고, 맛보는 3단계 감별기술을 구사했다. 치킨을 한점 뜯을때마다 콜라로 입을 헹구고 다음 치킨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치킨 감별은 와인보다 어렵다. 튀긴지 오래되면 향과 바삭함이 줄어든다. 시험용 치킨은 최소 3시간 이상 지난 음식이다. 코르크를 따면 시간이 흐를수록 향이 깊어지는 와인보다 악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

실기영역에선 치킨과 콜라를 함께 마실 수 있다. 치맥을 맛볼 수는 없다. 응시자중 미성년자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실기영역에선 치킨과 콜라를 함께 마실 수 있다. 치맥을 맛볼 수는 없다. 응시자중 미성년자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후라이드 영역은 2종류를 맛봤지만 거의 구분하기 어려웠다. 어떤 치킨은 새우와 홍합까지 재료로 쓴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고백하건대 기자는 6개월에 1번정도나 치킨을 먹는다. 가장 자신있었던 짭쪼름한 교촌치킨은 실기용으로는 맛볼 수 없었다. 배달의 민족이 펴낸 '치슐랭가이드'를 하루 전날 벼락치기 한 게 전부다. 책에 나온 치킨 종류만 최소 50종이다. 정답풀이를 해보니 필기와 실기점수가 각각 50점에도 못미쳐 불합격이다. 당연한 결과다. 치킨을 책으로만 배워서는 치믈리에의 경지에 도달하기 어렵다. 시험지 마지막 면에는 이런 문구가 써있다. '누가 치킨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그대의 얼굴을 보게하라.' 내년에 다시 도전해 더 좋은 기사를 쓰기를 희망한다.

'치믈리에' 자격시험, 직접 쳐보니


이번 시험은 경쟁률도 치열했다. 예비심사로 치러지는 온라인 시험에 58만명이 몰렸다.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지원자보다 많다. 이중 2만7000여명이 예비심사를 통과했고 추첨을 통해 500명만 현장에서 시험을 치렀다. 여기까지 오는데만 경쟁률이 50대 1을 넘는다.
시험장에 오는 것조차 치킨이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수준이다. 작년엔 119명의 치믈리에가 탄생했다.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의 김봉진 대표는 “지난해 합격자들에겐 자격증을 못드렸지만 이번 합격자들에겐 정식 자격증도 발행할 예정”이라며 “합격하신 분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활동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ksh@fnnews.com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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