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행동 카라는 폭염 속 농장동물의 폐사가 속출하는 가운데 공장식 축산 일변도의 밀집 사육시설에서 더 큰 동물 희생이 우려된다며 정부가 농장동물들의 사육환경을 개선해야한다고 25일 밝혔다.
올여름 폭염으로 인해 폐사한 농장동물은 지난 20일 기준 벌써 총 110만5000마리에 달했다. 폭염의 장기화가 예고되는 상황에서 희생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폭염에 따른 농장동물의 폐사 피해는 2012년부터 집계되기 시작해 2013년 212만마리, 2014년 112만마리, 2015년 267만마리, 2016년 629만마리, 2017년 726만 마리 등으로 2016년부터 큰 폭으로 커져왔다. 우리는 농장동물의 폐사가 대규모 밀집 사육환경에서 기록적인 더위와 맞물려 더욱 커지고 있다고 카라는 지적했다.
이번에 폐사한 농장동물은 닭 104만마리, 오리 3만8000마리, 메추리 2만 마리, 돼지 7000마리로 닭의 희생이 제일 컸다. 닭과 오리 등 가금류와 돼지는 땀샘이 발달하지 않아 대사열을 몸 밖으로 쉽게 내보내지 못한다. 특히 닭은 체온이 41도로 높고 몸이 깃털로 덮여있어 체온조절을 하려면 호흡과 물이 중요하다. 환기가 잘되는 그늘을 제공하고 많은 양의 물을 마시게 함으로써 고온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와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사육환경이 열악하다면 더위를 피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국내 사육 닭의 케이지 면적 기준은 산란계가 마리당 0.05㎡, 육계가 마리당 0.046㎡으로 매우 좁다. 이는 A4 용지 한장 크기인 0.06237㎡보다도 작은 수치다. 게다가 실제 케이지에는 더 많은 수의 닭들을 넣곤 하므로 저 기준마저 충족 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현실에서는 허다하다.
국내 산란계 농가 대부분이 5~6마리가 들어간 케이지를 종횡으로 한껏 쌓아놓은 배터리케이지 사육 방식을 택하고 있다. 케이지 사육보다 평사 바닥 사육이 많다고 하는 육계 또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태어난 지 35일만에 몸집을 급속히 불리워 도살 당하는 육계는 대부분 창문도 없는 무창계사에서 집단 사육된다. 축사가 꽉 들어찰 정도로 빽빽하게 키우기에 닭에게 좁고 불편하기란 산란계에 못지 않다.
공장식 축산의 대량사육 문제는 비단 면적의 개념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소의 비용을 들여 동물의 고통은 아랑곳 않고 죽지 않을 만큼 관리하며 최대의 수익을 내려다 보니 습성을 억누르고 착취하다시피 하는 게 일상이다.
공장식 축산 환경에서 닭들은 이미 기본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는 상태다. 이런 조건에서 밀집 사육환경은 고온 스트레스를 배가한다. 축사 내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것만도 어려울 텐데 폐사가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하지만 정부의 방침 속에 공장식 사육환경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카라는 사육환경 개선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미온적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지난해 살충제 달걀 사태로 케이지 사육에 대한 문제가 커지자 (케이지 철폐 대신) 케이지 사육 마리당 면적 상향 방침을 내놓았다. 기존 케이지 사육의 마리당 면적 기준이었던 0.05㎡를 0.075㎡로 높이겠는 것이다.
하지만 케이지 사육 마리당 면적을 기존보다 0.025㎡ 넓히면 농가에서 진드기 제거를 위해 더이상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까? 그리고 실제 누가 케이지당 마리 수를 일일이 점검한단 말인가.
신규 농장에 오는 9월부터 적용되는 이 기준은 기존 케이지 농장의 경우 무려 7년이라는 유예기간을 부여 받아 2025년 8월 31일까지 케이지를 넓히면 된다. 미봉책에 유예기간까지 주다니 실질적 개선은 포기한 셈이다. 유럽연합 등지를 포함한 해외에서는 수 년전부터 케이지 철폐를 선언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고작 케이지 면적을 넓히는 데 치중하고 있는 셈이다.
카라는 "정부는 사육환경의 근본적 개선과 함께 생명 폐기처분을 당연시하지 말고 적정 사육 마리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며 "아울러 대량 사육을 부르는 공장식 축산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내에서 사육중인 닭의 수는 올해 2분기 1억 9천101만6000 마리로 역대 최대를 찍는데, 육계와 산란계 모두 적정 사육두수를 벗어난 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통계청은 양계 농가들이 월드컵 특수 및 여름철 닭고기 수요 증가에 대비하여 육계 사육을 늘린 것을 주요한 원인으로 봤다. 생명은 고기 찍어내는 기계가 아니건만 ‘치믈리에’와 같은 용어를 유포하며 과도한 닭고기 판촉과 홍보에 열을 올리는 현상도 공급과잉과 무관하지 않다. 공장식 축산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만큼 언제까지 농장동물을 축산물로서 원하는대로 소비할 수 있을지 반성이 필요하다.
산란계 또한 달걀 생산량이 농가 규모화로 급증해온 터다. 양계협회는 지난 4월 달걀값 폭락을 걱정해 10만 마리 이상 사육농가를 대상으로 55주령 이상 닭 850만 마리에 대한 자율 도태 방침을 결정하고 정부에 달걀 수매를 요구한 바 있다. 멀쩡한 닭들을 도태시킬 정도로 만성적인 공급과잉 상태를 겪고 있는 것이 산란계의 현실인 것이다. 특히 대규모 사육기반을 갖춘 배터리케이지의 경우, 과도한 입식을 자제해야 한다.
자체적 상한이 없는 공장식 축산은 폭염 폐사를 부채질하며 시장 가격 논리에 입각한 생명 폐기처분을 무한반복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봉책이 아니라 전면적인 방향수정이다. 정부는 사육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한편 공급과잉에 의한 생명 폐기처분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적정 사육마리 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camila@fnnews.com 강규민 반려동물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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