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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포항지진 1년, 또 겨울 오는데… 91가구 여전히 텐트 생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13 17:23

수정 2018.11.13 17:23

집 전체 파손된 주민들 대부분 새 보금자리 마련..파손 적은 가구 복구 더뎌 "200만원으로는 턱없다"
"지열발전이 지진 유발" 일부선 자연발생 믿지 않아..국민감사 청구 결의대회도
포항지진 1년을 5일 앞둔 지난 10일 이재민 임시구호소인 흥해실내체육관에는 한미장관아파트가 집인 할머니 한 분이 체육관을 지키고 있었다.
포항지진 1년을 5일 앞둔 지난 10일 이재민 임시구호소인 흥해실내체육관에는 한미장관아파트가 집인 할머니 한 분이 체육관을 지키고 있었다.

지난해 발생한 포항지진 이후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된 포항지열발전소. 건너편에 국내에서 처음 액상화 현상이 발견된 흥해평야와 흥해읍 도심이 보인다.
지난해 발생한 포항지진 이후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된 포항지열발전소. 건너편에 국내에서 처음 액상화 현상이 발견된 흥해평야와 흥해읍 도심이 보인다.


【 포항=최수상 기자】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망천리 흥해평야는 동해안에서 보기 힘든 꽤 큰 평야로 포항 최대의 곡창지대다. 여기서 생산되는 '흥해쌀'은 맛좋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15일 오후 2시29분, 이곳 추수 끝난 논 여기저기서 물이 하늘로 치솟았고(액상화) 땅은 정신없이 흔들리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리히터 규모 5.4로 국내 역대 두번째로 큰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액상화 딛고 풍년 일군 흥해읍…후유증은 진행 중

1년을 5일 앞둔 지난 10일 이곳을 찾은 기자에게 흥해읍 중성리 주민 최성규씨는 "액상화가 발생한 논들이 많았지만 농사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며 "올해 아무런 탈 없이 벼농사를 지었고 지난해 못지않게 수확했다"고 말했다.
이웃집 김정옥 할머니(78)도 가을추수가 막 끝날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지진에 집이 무너져 새집을 짓고 세 들어 살던 집에서 살림살이도 모두 옮겨왔다. 한시름 놓았다며 새집을 자랑했다. 흥해읍의 가을은 지난해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지난해 포항지진으로 전파 또는 반파 주택은 956건, 소파 판정이 난 주택피해는 무려 5만4139건이다. 복구비용은 약 1800억원으로 추정됐다. 집 전체가 파손된 주민들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거나 새집을 지었다. 하지만 상당수 소파 주택에서는 여전히 적지 않은 불만이 이어졌다. 망천리에 사는 김모씨(68)는 "소파의 경우 일괄적으로 복구비 100만원에 의연금 100만원을 주다보니 실효적인 복구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땜질식 복구밖에 안 돼 지진이 나면 또 부서질 곳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이재민 임시구호소인 흥해실내체육관에는 현재도 가장 피해가 컸던 한미장관아파트 주민 82가구 등 91가구 208명이 221개의 텐트에 머물고 있다. 생활여건상 실제로는 30~40명만이 매일 이곳을 지켰다. 포항시가 정밀안전진단을 통해 안전판정을 내렸지만 실제 거주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주민들의 처지다.

이들은 가구당 200만원의 복구비 수령을 거부했다. 한 주민은 "200만원으로 제대로 복구만 된다면 이처럼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한미장관 아파트에 나붙은 플래카드에는 아파트 주민들의 분노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이재민 가운데 13%가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이다. 이들은 9개월째 텐트와 컨테이너, 임대주택에서 지내고 있다. 이재민들은 이주 기한인 오는 2020년 3월까지 이것을 떠나야 하지만 당장 옮겨갈 곳이 없어 막막한 상항에 처해 있다. 재개발 등 복구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려 주변 변두리 마을에는 슬럼화가 나타나고 좀도둑까지 출몰하고 있는 등 후유증이 커지고 있다.

■포항지열발전소에 쏠린 민심…유발지진 여부 관심

일각에서는 포항시를 상대로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며 지진발생의 원인으로 지열발전소를 지목해 이를 규명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명박정권 때 추진된 사업이지만 피해 보상금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주민들 처지에서 보면 분명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는 게 이곳의 분위기다.

포항시 흥해읍 한미장관아파트 주민들을 비롯한 흥해읍 지역 피해주민들의 관심은 지열발전소에 쏠려 있다. 2일과 7일 장날마다 흥해시장 로터리에서 열리는 집회에서는 학계의 논문을 근거로 포항지진이 자연발생지진이 아닌 지열발전소에 의한 '유발지진' 주장이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왔고 이런 주장들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지열발전소가 포항지진을 유발했다는 인과관계는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흥해읍 주민들은 지난 4월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이진한 교수가 포항지진의 원인을 밝힌 연구 논문이 과학전문잡지 사이언스에 게재된 사실을 접한 뒤 심증을 굳혔다. 게다가 스위스 취리히 공과대학의 위머 교수팀이 원거리 지진자료와 인공위성 레이더 원격탐사 자료를 이용해 역시 포항지진이 유발지진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을 제시한 논문까지 함께 실린 사실도 주민들을 흥분시켰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지진이라는 반대 주장도 적지 않지만 주민들은 이를 믿으려 하지 않는 분위기다.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를 비롯한 4개 민간시민단체는지난 12일 흥해종합복지문화센터에서 '유발지진 진상규명에 대한 감사원 국민감사청구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정부가 최근 지열발전과 관련해 은폐시도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어떠한 은폐행위도 없었다며 내년 2월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즉각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주민들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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