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성남 태평동 도살장은 전국 최대의 개 도살장이다. 한해 최소 8만 마리 이상의 개가 잔인하게 도축되는 공간으로, 여러 업체가 도살장에 들어서 전국 각지로 개고기를 유통시켜 온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개 도살장이다.
태평동 도살장은 그간 잔인한 도살 방식과 위생 문제, 불법적 요소 등으로 시민들의 지탄을 받아왔다. 인근 주민들은 뒤끓는 악취와 소음으로 오랜 시간 피로감을 호소해왔다.
동물권단체 케어는 지난 여름 세 차례 도살장을 기습해 인플루엔자 개고기가 전국에 유통되고 있는 실태 등 시민들의 시야에서 멀어져있는 도살장의 현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또한 도살장 개고기가 유통되는 도살장 인근 모란시장 5개 업소를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그런 태평동 개 도살장이 지난 22일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날 오전 8시부터 성남시는 도살장을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진행했다. 이는 동물운동의 성과일 뿐만아니라, 그간 개 도살장의 폐쇄를 염원해 온 시민들의 지속적인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개들의 안전과 생명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도살장은 철거되겠지만, 얼마 전까지 남아있던 100마리 이상의 개들은 케어가 확인한 바, 여러 차례에 걸쳐 상인들이 마련한 다른 장소로 이동한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성남시는 개 도살업자들이 개들을 다른 곳으로 옮길 시간을 충분히 제공했다는 게 케어 측의 주장이다.
성남시는 동물보호법상 도살장의 개들을 피학대동물로 간주해 긴급격리조치를 발동하고 관리할 수 있었다. 발생한 비용은 학대자들에게 청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면 학대자들은 비용을 부담하는 일이 버거워 소유권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런 수순이다. 이는 상상에 불과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실제 하남 감일지구 개 지옥 사건에서 케어의 기획으로 실현된 적 있는 바로, 지자체의 동물보호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케어 측은 성남시가 동물보호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면 상인들에게 철거 날짜를 미리 고지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했다면 남아있는 개들도 살리고, 민관이 협력해 개들을 입양 보내는 일까지 이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모란시장의 경우, 도축시설은 철거됐으나 개고기는 여전히 판매가 가능하고 시장 현대화 차원에서 상인들을 지원하기까지 했다.
케어 측은 "태평동 도살장은 그렇게 되지 않았어야 한다. 남아있는 동물들의 안위까지 살피지 않고 상인들에게 미리 길을 열어 준 것은 생명을 고려하지 않은 큰 실책이다"라며 "태평동 도살장은 진작 무너져 내려졌어야 하지만, 이제라도 동물보호에 대한 시민들의 급격한 인식 변화로 쓸쓸히 막을 내렸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성남시의 아쉬운 행정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며칠 전까지 철거가 코 앞인데도 불구하고 태평동의 상인들은 너무나 태평스러운 모습이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도살장이 사라졌다고 자축하기만 할 것이 아니다. 케어는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도살장을 하나씩 깨부수는 일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며, 시민분들의 지속적인 연대를 요청한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것은 태평동 도살장뿐만 아니라, 개식용 문화 그 자체이다"라고 덧붙였다.
camila@fnnews.com 강규민 반려동물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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