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서 개인전 여는 피오나 래
파스텔 빛의 저것들은 구름일까, 안개일까. 그 사이로 피어나오는 초록빛 덩굴 줄기가 마치 봄의 싹이 움트는 듯한 생명력을 보인다. 찬바람이 쌩쌩 불어오는 이 겨울에도 그의 캔버스 속 그림을 들여다보면 따뜻한 봄 기운이 느껴진다.
개관 30주년을 맞은 학고재 갤러리가 서울 청담동에 새롭게 연 '학고재 청담'의 첫 전시는 1963년생 영국 작가 피오나 래(사진)의 개인전으로 꾸며졌다. 1988년 '프리즈'전에서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Ba)'의 한 사람으로 데뷔해 이름을 알렸던 작가다. 홍콩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 후 인도네시아를 거쳐 영국으로 온 피오나 래는 동양과 서양의 신화를 혼합한 듯한 느낌을 주는 회화 작업들을 지난 30여년간 진행해 왔다. 지난 2011년에는 여성 최초로 영국왕립아카데미대학 회화과 교수로 임용돼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교수로 임용된 후인 2013년부터 최근까지 5년간 작업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흑백으로 그려진 작품도 어둡지 않고, 채색 작품은 주로 파스텔 톤으로 그려져 몽환적이다. 구름 속처럼 보이는 그의 그림에는 용 또는 힌두 신화에 나오는 새 가루다, 유니콘이 스쳐 지나간 흔적들이 보이고, 안갯속 같은 캔버스에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식물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서양화이지만 마치 동양의 화조도나 사군자화 같은 느낌도 준다. 한편 그의 작품은 텅 빈 화면 속에 지워진 듯한 드로잉의 흔적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스스로를 극복하는 흔적임과 동시에 아날로그 세계에서 완전한 삭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메시지로 던지고 있다.
피오나 래는 지난 2016년부터 화면에서 검은색과 회색을 줄여가며 파스텔톤의 안개 같은 추상회화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스튜디오 지브리와 디즈니 등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었고 거기서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다. 또 내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홍콩과 인도네시아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아시아의 그림과, 자수, 네온사인 등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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