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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韓 궁금증] 왜 어른들은 명절에 잔소리를 하는 걸까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2.03 08:30

수정 2019.02.03 08:30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미혼남녀 명절 스트레스 1위 '어른들의 잔소리'

설 연휴가 시작됐습니다. 명절에 마땅한 도피처 없이 친척집으로 향해야 하는 청년들은 출발 전부터 극심한 스트레스에 휩싸입니다. 이번에 내려가면 어른들은 또 무슨 이야기를 하실까, 어떻게 하면 친척들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을까.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보는 어른들이지만 볼 때마다 어떻게 그렇게 궁금한 것이 많으신 건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대학 졸업 언제 할 거냐 해서 졸업했더니 그다음은 취직입니다.
취직 언제 할 거냐 해서 취직했더니 이제 결혼을 묻습니다.

명절 연휴 '어른들의 잔소리'는 실제 청년층의 스트레스 요인 1순위로 꼽혔습니다. 22일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성인남녀 1004명을 조사한 결과 미혼자들의 절반 이상(56.4%)이 어른들의 잔소리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현상을 비꼬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친척에게 듣기 싫은 질문을 받았을 때 '추석이란 무엇인가'로 되물으라던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의 칼럼은 지난 추석 대히트를 쳤습니다. 잔소리를 할 거면 그만큼의 금액을 지불하라는 '명절 잔소리 메뉴판'도 인기를 끌었죠. 학업 질문엔 5만원, 졸업과 취업 질문엔 15만원, '끝판왕' 결혼과 육아 질문엔 30만원의 금액이 붙었습니다.

■애정과 관심의 표현.. 스트레스 주려는 것 아냐

그동안 명절 잔소리에 스트레스만 받았지 정작 어른들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되물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체 왜 어른들은 잔소리를 하는 걸까요? 5060세대 부모님들께 직접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50대 후반 남성 A씨는 관심의 표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요즘처럼 경기가 얼어붙었을 때 자식세대들이 어려움 없이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랍니다. 스트레스를 주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못박았습니다. 만약 잘 됐다면 축하를 해주고 싶어서,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에서라고 하네요. B(54·여)씨도 비슷한 뜻으로 하는 이야기라고 강조했습니다. 당연히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된 말이라며, 1년에 고작 한 두 번 보는 조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묻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피를 나눈 가족이기 때문이라는 대답도 있었습니다. 60대 초반 여성 C씨는 "남도 아니고 가족인데 당연히 궁금해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며 반문했습니다. 생판 모르는 남의 자식들에게는 물어보지도 않는다며, 내 자식이고 혈육이니 궁금하고 더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애정과 관심의 표현이 잔소리로 들리는 이유에는 '세대 차이' 때문이라며 입을 모았습니다. B씨는 우리가 젊었을 때는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대다수가 불평 없이 수순을 밟았다고 말했습니다. 요즘 청년들은 결혼을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염려스러운 마음이 커 걱정의 표현이 늘어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D(57·남)씨는 "젊었을 때 같은 질문을 들었다면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른은 당연히 질문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 세대는 다르다"라며 그 원인을 짚었습니다. D씨는 기성세대는 기성세대가 살아온 방식이 있고, 청년세대는 그들 나름의 생각이 있는 것이라며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가치관의 차이라고 답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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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간 언어 차이에서 비롯되는 문제, 상호 존중 필요

전문가의 진단도 비슷합니다. 연세대 심리학과 이동귀 교수는 부모세대의 잔소리를 '관심의 표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걱정으로 관심을 나타내고, 다정다감한 말보다 무뚝뚝한 말에 익숙하기 때문에 '잔소리'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의 부모세대는 윗세대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배운 것들을 그대로 행해왔습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조언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마찬가지로 인생을 살며 중요하다고 느낀 것들을 자식세대에게 전수하고 싶어합니다.

문제는 어른들이 자식세대가 사용하는 언어에 익숙하지 않다는 데서 발생합니다. 이들은 "~해야 한다"처럼 당위적인 표현, "옳다, 그르다"처럼 가치판단이 담긴 표현을 주로 사용합니다. 게다가 무게가 담긴 어른들의 말은 친구 사이의 대화처럼 적당히 듣고 거르기가 힘듭니다. 거부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바운더리 개념이 다른 것도 하나의 이유입니다. '정'이 강하게 지배하던 시대를 살아온 부모 세대와는 달리 자식세대는 가족 내에서도 자신과 타인을 철저히 구분합니다. 부모는 가족이니 당연히 해줄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하지만, 자식에게는 그게 아니죠.

이 교수는 명절 잔소리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서는 세대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나의 언어와 부모님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적당히 이야기를 듣고 자리를 피하는 요령도 필요하다네요. '이번 명절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겠지'라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대 수치를 낮춰야 한답니다. 부모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년들의 시대정신과 가치관을 존중해야 합니다. 또, 걱정의 말 대신 "수고했다.
많이 힘들었지"와 같은 격려를 건네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명절 #스트레스 #잔소리 #세대차이

sunset@fnnews.com 이혜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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