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공개(ICO)에 대한 투자 위험이 높고 국제적 규율체계도 확립돼 있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해 ICO 제도화에 대한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겠다.” 정부가 1년여 만에 내놓은 ICO에 대한 공식입장이다. ICO가 위험하니 정부는 당분간 손대지 않겠다는 말이다.
사실 ICO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예상밖이다. 일반적인 정부의 발표는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으니 강력한 규정을 적용해 제도권 내에서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틀을 갖춘다. 그런데 이번에는 위험하니 손대지 않겠다고 한다.
정부가 손대지 않으면 위험이 사라지는가? 사라지지 않는 위험에 국민을 고스란히 내놓겠다는 말 아닌가? 그렇다면 국민은 위험에 내놓고 정부는 스스로를 보호하겠다는 말인가?
정부가 '위험한' 암호화폐 정책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국민들은 보호막 없는 피해에 노출되고 있다. 우선 제대로 기업을 만들어 암호화폐 사업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여기저기 막혀있는 규제장벽 때문에 해외로 쫓겨나고 있다. 최근 암호화폐 관련 기업들의 해외진출 뉴스가 유독 많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국내에서 사업할 수 없어 해외에서 기회를 찾아보겠다고 짐을 싸는 모양새댜. 결국 창업과 취업기회를 놓치는 피해는 국민들의 몫이 되고 있는 셈이다.
번듯하게 규정을 지켜 사업하겠다는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간 빈자리를 '한탕'을 노리는 세력들이 메우고 있다. 암호화폐 다단계 판매, 시세조작, 사기거래 같은 범죄와 피해자에 대한 뉴스가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고 있다. 게다가 범죄세력들은 암호화폐나 블록체인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노인이나 주부 같은 정보 사각지대를 주로 공략한다. 정보도 없고 사기피해를 호소할 곳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국민들의 피해에 대해 정부는 뭐하고 있느냐고 다그치면 정부가 내놓는 답은 한결같다. 이미 위험을 경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리자의 책임은 팔짱낀 채 경고하는 것이 아니다. 예리하게 벼린 칼로 멋진 요리를 만들 수 있도록 테이블을 정돈하는 것. 대신 칼을 흉기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율을 만드는 것. 규율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강력히 처벌해 규율을 어기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 이것들이 관리자의 책임이다. 그렇게 국민을 보호하는 책임을 져달라고 국민들은 세금을 내는 것이다.
정부가 더이상 직무를 유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ICO와 암호화폐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면 그 위험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겠다고 팔짱 낄 일이 아니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팔을 걷어 붙여야 한다. 이제는 팔짱을 풀어야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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