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노혜경 "페미니즘 집회, 표현이 서툰 것..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2.21 10:20

수정 2019.02.22 10:06

[노혜경 시인에게 물어본 '자신의 페미니즘이란?' ①]
-"휴머니즘에 여성이 주체적으로 들어있지 않아…페미니즘과 구분해야"
-"여성을 성적인 도구로 여긴 '버닝썬' 사건…여전히 바뀌지 않은 여성의 삶"
-미투, 여성들에게 말할 용기가 생긴 것뿐…상황은 같았다"
노혜경 시인이 서울시 용산구 한 카페에서 취재진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노혜경 시인이 서울시 용산구 한 카페에서 취재진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페미니즘이 주목받을수록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 ‘백래시’ 현상이다.

최근 대학가에 잇따른 총여학생회 폐지 역시 백래시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페미니즘의 물결 속에서 오히려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는 상황.

과거 SNS를 통해 ‘내가 원조 꼴페미’라며 선배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노혜경 시인은 “반발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백래시에 부딪히고 옆으로 샐 때도 있지만 페미니즘은 앞으로 잘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번 자유를 맛본 사람은 결코 과거로 역행할 수 없다”는 그에게 이 시대에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페미니즘에 대해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됐나?

▲딱히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90년대 후반에 문단권력의 성차별에 저항하는 여성시운동을 했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에 사이버 성폭력 사건이 많아 거기에 대해 글쓰기를 시작해서 이래저래 말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나 같은 사람을 감히 페미니스트라고 해도 되는지 조심스러웠다. 여성인권과 관련해 강한 어조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나중에 공부해보니까 이런 발언들을 페미니즘으로 통칭하더라.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나?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메갈리아 사태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메갈에 대해 굉장히 비난하더라. 그걸 보다 페이스북에 "내가 원조 꼴페미다"라고 적었다. 메갈리아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나 같은 페미니스트 선배가 있으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지선언 한 것이다. '나도 메갈리아'라는 뜻이었다.

-메갈리아나 워마드도 페미니즘인가?

▲메갈리아나 워마드도 페미니즘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페미니즘도 학문적으로 보면 자유주의, 레디컬, 레즈비언 페미니즘 등 여러가지 종류가 있지 않나. 하지만 개인적으로 워마드는 생물학적 여성주의인데다 약간 전투적이라서 그다지 동의하는 편은 아니다.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할까?

▲당연히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하지만, 페미니즘은 다음 단계의 사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휴머니즘은 인본주의라고 말은 하면서도 자본주의 가부장제와 함께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인간의 범주에 여성이 주체로서 들어가지 않았다. 여성은 남성의 일부로서 존재했다. 19세기 이후 여성이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나오면서 각종 성차별과 성별 분업적 담론 등이 남성주의적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이런 억압을 바로 잡아야 하겠다는 모든 운동을 페미니즘이라 부른다.인간영역의 확장이라는 점에서는 휴머니즘을 이어받았으나, 분명히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게 좋겠다.


노혜경 시인이 서울시 용산구 한 카페에서 취재진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노혜경 시인이 서울시 용산구 한 카페에서 취재진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페미니즘과 관련해 '과거와 결별해야 할 용기'라고 한 적 있다. 과거란 어떤 걸까?

▲우선 당장 말할 수 있는 것이 가부장제와의 결별이다. 여성이 생식의 도구이자 사회적 구색이던 시절. 태아성감별과 여성 정치인의 부재를 예로 들어보자. 90년대 초반만 해도 남녀 성비가 굉장히 불균형하지 않았나. 셋째아이의 경우 지역에 따라 남아 300대 여아 100 정도까지 간 적도 있다. 여자아이를 임신하면 낙태하는 경우가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관료 중에 여성장관이 거의 없었다. 여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니까 구색맞추기 식으로 끼워 넣은 것이었다. 지금은 여성 국회의원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렇게 여성 국회의원들이 있을 수 있구나 한 게 불과 십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은 다른가?

▲변한 건 별로 없다. 최근 일어난 '버닝썬' 사건만 봐도 그렇다. 여전히 여성을 성적인 도구로 생각하고 그걸 당연시하는 남자가 많다. 스쿨미투도 같다. 여중, 여고생이 교사를 고발한다고 나섰는데 시정되는 게 없다. 너무 끔찍하다. 이게 왜 시정되지 않는지 이해가 안 간다.

'불편한 용기' 집회의 경우도 그렇다. 이정도 움직임 가지고도 너무하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불편한 용기'의 구호가 좀 마음에 안 들 수 있지만 이건 단지 서툰 것뿐이다. 나는 '불편한 용기' 참가자들이 굉장히 얌전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점이 서툰 것인가?

▲'문재인 재기해' 같은 표현이다. 페미니즘 운동도 근본적으로 정치운동이다. 정치운동은 언제나 지지자를 모으고 우리 편을 강건하게 뭉치게 하는 거다. 그런데 '문재인 재기해' 같은 표현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발언이니까 전략적으로 어리석고 서툰 셈이다. 하지만 전략, 전술이 서툴다고 해서 그 친구들이 주장하는 바가 틀렸다고 할 순 없다. 우린 모두 서툴지 않나.

-최근 서지현 검사에 이어 문학계, 체육계, 학교 등 미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여성들이 말할 용기가 생긴 것뿐이다. 10~20년 전만 해도 여성이 어떻게 살았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상황이 많이 안 좋았다. 성차별과 성폭력이 두 개의 축인데 가부장제도는 기본적으로 이런 폭력 없이 유지되지 않는다. 옛날부터 여성들이 겪고 있었지만 억울하고 분해도 뭐라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은 차츰 말하는 방법도 깨우치고 용기가 생긴 거다. 미투라기보단 성폭력 고발과 여성들의 연대라고 봐야한다.

-미투에 대한 백래시도 만만치 않은데?

▲반동·반발이야 어디에나 있다.
여성이 뭐라고 말만 하면 밟으려고 덤비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페미니즘이 강하니까 그만큼 반동도 크게 일어나는 거다. 페미니즘이 사회의 틀이나 이념을 바꿀 정도로 강력하다는 위기감이 없었다면 반동도 이렇게 심하게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백래시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글 싣는 순서]
①"페미니즘 집회, 표현이 서툰 것…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
②"페미니즘, 백래시에 부딪혀도 잘 나아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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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affle@fnnews.com 윤홍집 윤아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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