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노혜경 "페미니즘, 백래시에 부딪혀도 잘 나아가고 있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2.22 09:59

수정 2019.02.22 10:06

[노혜경 시인에게 물어본 '자신의 페미니즘이란?' ②]
-"성폭력 만연한 사회…여성, 사소한 자유도 누리기 어려워"
-"변화에 기여하지 않고 기득권 누리는 남성…가해자의 편"
-"페미니즘 교육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뤄져야"
-"페미니즘, 약자의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과 연대하는 것"
노혜경 시인이 서울시 용산구 한 카페에서 취재진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노혜경 시인이 서울시 용산구 한 카페에서 취재진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페미니즘이 주목받을수록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 ‘백래시’ 현상이다.

최근 대학가에 잇따른 총여학생회 폐지 역시 백래시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페미니즘의 물결 속에서 오히려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는 상황.

과거 SNS를 통해 ‘내가 원조 꼴페미’라며 선배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노혜경 시인은 “반발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백래시에 부딪히고 옆으로 샐 때도 있지만 페미니즘은 앞으로 잘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번 자유를 맛본 사람은 결코 과거로 역행할 수 없다”는 그에게 이 시대에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남성이 기득권을 갖고 있다면 어떤 것일까?

▲여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 분위기다. 내 나이가 되는 사람조차 밤에 혼자 택시를 타거나, 누가 말을 걸어오면 무섭다. 여성들은 이런 사소한 자유조차 누리지 못한다. 하지만 남성들은 다르지 않나. 이건 굉장히 큰 기득권이다.

일부 남성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바꾸는 데 기여하지 않고 기득권을 그대로 누리면서 내가 왜 가해자냐고 묻곤 한다.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은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사람에게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가해자라는 게 아니라 가해자의 편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내가 엄마와 여자친구를 이렇게 좋아하는데 왜 여혐이냐고 묻는 남성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물어보라. 엄마 대신 밥하라고 하면 할 거냐고. 엄마가 내 편들어주고 시중들어주고 나를 사랑해주니까 좋아하는 거다. 본인이 생각하는 여성의 모델과 딱 들어맞는 여성을 너무 좋아하는 것. 엄마를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인정하는 게 아니라 엄마라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게 아닌가?

-여성에게 유리천장은 어떠한가. 사법고시 등 합격자 비율을 보면 여성이 더 높기도 하던데?

▲공부 잘하는 여자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성폭력 당하지 않고 전문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영역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나마 공직사회가 조금 나아서 우수한 인력이 몰리는 것이다.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져서 합격자가 높은 게 아니다. 경로가 그거밖에 없는 것이다.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페미니즘이라기보단 인간을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교육이랄까? '네가 남자니까' '네가 여자니까'가 아니라 사람이니까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을 가르치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잘 모르니까 반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20대 남성들이 이해하는 페미니즘은 메갈리아니 워마드밖에 없지 않나. 실제로 페미니즘이 기나긴 역사 속에서 어떻게 활동해왔고 인류의 자유와 복지, 인권증진에 대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알아야 한다.


노혜경 시인이 서울시 용산구 한 카페에서 취재진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노혜경 시인이 서울시 용산구 한 카페에서 취재진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남편분과는 페미니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나?


▲딸을 기르면서 남편이 이런 말을 하더라. 우리 딸도 회사에서 모진 욕을 들으면서 살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부하 여직원에 대한 생각도 바뀌게 된다고. 내 딸과 남의 딸이 같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데 남편이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웠다. 남편이 열렬한 페미니스트로서 나서는 걸 기대하지 않는다. '불편한 용기' 집회에 가서 보디가드라도 한다고 생각해봐라. 나도 안 하는데 불편하지 않겠나. 다만 이 사람이 인간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조금씩 발전시켜 나가는 게 감사하다. 페미니즘의 핵심은 이거라고 본다.

-페미니즘도 자기성찰이 필요하지 않나?

▲페미니즘은 굉장히 성찰적인 것이다. 나 스스로도 젖어있던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으로서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얼마나 불행한 것인가를 이해하고 맞서 싸우는 것 자체가 성찰이다. 페미니스트로 살다 보면 나쁜 짓 하기 쉽지 않다. 매번 성찰하고 반성하고, 어떻게 하면 약자와 소수자를 돕고 연대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것이라고 착각하곤 하는데, 남성과 여성이 아니라 사회에서 약자의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과 평등하게 연대하는 게 페미니즘의 핵심이다.

-한국 페미니즘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나?

▲물론이다. 백래시에도 부딪히고 옆으로 샐 때도 있지만 잘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놓여있는 상황만 보면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싶을 만큼 형편없는 구석도 많다. 그러나 과거로 역행하지 않고 있다. 실패하고 좌절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페미니즘은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한번 자유를 맛본 사람은 거꾸로 돌아갈 수 없다. 페미니즘은 결국 자유다. 한 개인이 나라는 개체로서 주체성을 갖고 내가 나로서 굉장히 소중하다고 깨닫는 거다.

-페미니즘은 얼마나 성취했나?

▲아직 모른다. 서지현 검사사건같이 굵직한 변화가 일어나긴 했다. 하지만 상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서 사회 밑바닥까지 한꺼번에 변하진 않는다.
다만, 변화의 방향은 정해졌다. 느리든 빠르든 사회는 변화한다.
조금 더 빨리 변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빠르게 변할 수 있고, 반격을 받는다면 조금 느려질 뿐이다.

[글 싣는 순서]
①"페미니즘 집회, 표현이 서툰 것…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
②"페미니즘, 백래시에 부딪혀도 잘 나아가고 있어"

#노혜경 #페미니즘 #여성 #기득권 #성폭력 #잠재적가해자 #자기성찰 #연대

banaffle@fnnews.com 윤홍집 윤아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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