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홍 사진작가
亞 지역 140여명 할머니 만나 2003년부터 국내외 돌며 사진전..증언 영상 4개국어로 배포 예정
亞 지역 140여명 할머니 만나 2003년부터 국내외 돌며 사진전..증언 영상 4개국어로 배포 예정
"잊지않으려면 기록해야 합니다.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죠."
안세홍 사진작가(50·사진)는 1년의 반 이상을 필리핀·인도네시아·중국·동티모르 등을 떠돈다. 지금까지 아시아 전역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140여명의 생의 끝자락을 기록으로 남겼다. 지난해 가을엔 북한에 생존해 있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기 위해 평양에 다녀왔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올해로 벌써 22년째.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담기 위해 다시 한 번 무거운 짐가방을 싸게 될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봤다.
지난 20일 밤 일본 나고야에 거주하는 안 작가와 긴 통화를 했다. '기억'과 '기록'에 대해 얘길 나눴다. 안 작가가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한 아시아 지역의 위안부 할머니는 동티모르 10명, 인도네시아 30여명, 필리핀 30여명, 중국 26명, 조선인 40여명(국내외 한국인)등 140여명이다. 그는 20여년간의 이 작업을 '겹겹 프로젝트'라고 명명한다. '겹겹'은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들에게 남아 있는 겹겹이 깊이 파인 상처를 의미한다. "단순히 한·일 양국 국가 간의 문제로 풀 게 아니라 아시아 전체와 연대해 전시 여성 성폭력, 여성 인권 문제로 접근해가야 합니다" 그가 아시아 위안부들을 찍는 이유다.
안 작가가 만난 일본군 위안부 카르민다 도우 할머니(1926년생 추정, 동티모르)는 알츠하이머를 앓는 바람에 대화가 불가능할 지경이지만 일본군의 만행에 대해서만은 선명하게 기억했다. "화제를 일본군 얘기로 돌리자 마냥 아이처럼 웃기만 하던 할머니의 표정이 일순간 이지러지더군요. 과거의 기억을 빼앗는 알츠하이머조차 당시의 충격을 지우진 못한다는 걸 알았죠."
평안남도 출신 고(故) 이수단 할머니(1922~2016년)는 열아홉살 때 중국으로 끌려가 5년간 중국 아청과 둥닝 위안소에 있었다. 오전엔 사병이, 밤엔 장교가 들이닥쳤다고 한다.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 할머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포기한 채 결국 중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안 작가는 아기인형을 마치 진짜 아기처럼 받아들고 "아가야, 너희 엄마, 아빠는 어디로 갔니. 이제 나랑 같이 살자"며 눈물을 흘렸던 할머니의 생전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그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찍기 시작한 건 1996년 2월, 나눔의 집을 처음 방문하면서부터다. 지난 2003년 처음 국내에서 사진전을 연 이래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오는 3월엔 일본 교토 남쪽의 작은 도시 교타나베시 중앙도서관에서 전시가 예정돼 있다. 지난해 9월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맞물려 안작가의 평양 방문 허가가 떨어졌다. 비록 북녘에 생존해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진 못했지만 2차 방북을 준비 중이다.
올해는 사진기록 외에 그가 가진 증언 영상을 한·중·일·영 4개국어로 배포할 계획이다. "언젠가는 이 자료들이 위안부 연구·조사자료로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후원자들이 있지만 비용이 턱없이 부족해 빚만 1억원 가까이 되지만, 계속 끌고나갈 생각이다. 겹겹이 깊게 파인 할머니들의 상처를 외면할 수 없어서라고 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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