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구글 건 문제 삼을 듯
EU에 비하면 한국은 약과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양자 협의를 우리 정부에 요청했다. 양자 협의 요청은 2012년 양국 FTA가 발효한 이래 처음이다. USTR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행위를 조사할 때 미국 기업에 충분한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시장에선 USTR이 퀄컴이나 구글 건을 문제 삼을 것으로 본다.
EU에 비하면 한국은 약과
과거에도 미국은 종종 공정위 조사에 불만을 드러냈다. 3년 전 퀄컴 과징금 결정을 앞두고 미 상무부 차관이 산업통상자원부 차관과 공정위 부위원장을 만나고 가기도 했다. 작년엔 미 상공회의소가 USTR에 낸 의견서에서 한국의 규제·행정 장벽 사례로 퀄컴 건을 들기도 했다. 이 같은 우회 압박 전술이 통하지 않자 이번엔 한·미 FTA 협정문(16장 1조 3항)을 근거로 양자 협의를 공식 요청한 것이다.
정부는 정해진 룰에 따라 차분히 대처하면 된다. 2016년 12월 공정위는 퀄컴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이유로 1조원이 넘는 과징금을 물렸다. 조 단위 과징금을 매길 땐 그만한 근거가 있었을 것이다. 퀄컴은 공정위 명령에 불복하는 소송을 서울고등법원에 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또한 퀄컴의 반론권을 보장하는 장치다. 사실 미국 정보기술(IT) 업체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곳은 유럽이다.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은 구글·애플·페이스북 등을 상대로 무시무시한 칼을 휘두르고 있다. 유독 한국 공정위만 미국 IT 기업에 까탈스럽게 구는 게 아니란 뜻이다.
다만 우리는 공정위에 좀더 진중한 처신을 주문한다. 지난해 4월 공정위는 퀄컴에 1조300억원 과징금을 물리는 데 '공'을 세운 직원이 '대한민국 공무원상' 수상자로 뽑혔다고 밝혔다. 퀄컴 입장에선 속이 쓰릴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지난해 여름 한 강연에서 "퀄컴 제재와 비견되는 결과를 낼 수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그때 시장에선 김 위원장이 구글을 염두에 둔 것으로 짐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김 위원장은 지난 11일 벨기에 브뤼셀 기자간담회에서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에 구글 플레이스토어가 기본탑재돼 번들링(묶음판매)되고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 등 국내 IT 기업들은 역차별 시정을 호소한다. 이를 바로잡는 것은 공정위의 몫이다. 하지만 한국 경쟁당국이 특정 외국기업을 겨냥한다는 오해를 살 필요는 없다. 이해관계가 날카롭게 부딪히는 반독점 분쟁에서 가벼운 처신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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