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인데 직군·학교 따지거나 재직증명서 요구하는 사교모임도
전문가 "끼리끼리 문화의 단면"
전문가 "끼리끼리 문화의 단면"
#1.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한모씨(32)는 최근 스마트폰으로 동호회 애플리케이션 '소모임'을 깔았다가 가입을 포기했다. 대기업·전문직 등 소위 '상위 클래스'만 모이는 단순 커뮤니티 모임이었지만 재직증명서를 떼어 오고 사원증도 인증해야 하는 등 가입절차가 너무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2. 얼마 전 직장인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독서모임에 가입한 이모씨(29)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독서라는 목적이 분명한 모임이었지만 가입 당시 직군·직장·학교 등을 물어보고 "모임 사람들과 상의해서 연락드리겠다"는 절차까지 거쳤다. 가입 이후에도 3번 모임까지는 '이 모임과 맞는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유예기간도 뒀다.
■"남자 외모·능력 봅니다…여자는 OK"
27일 직장인 및 각종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호회 앱에 '전문직 모임' '상위 1% 모임' 등 특정 직군·학벌 등만 모집하는 모임이 늘어나고 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취미모임뿐 아니라 지역이나 직장을 기반으로 한 단순 커뮤니티도 늘어나는 추세다.
동호회 중에서도 회원들의 결혼 유무와 직업, 학벌 등 까다로운 기준을 둔 모임들은 늘 인기다. 동호회 앱을 이용하는 직장인 오모씨(29)는 "보통 동호회를 통해 이성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직장 등이 보장된 모임은 자리가 없어 대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결혼정보업체 가연이 지난 2017년 미혼남녀 회원 37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중 약 68%가 '동호회 활동을 한다'고 답변했다. 실제 한 모임의 가입 기준은 '전문직·공기업·공무원·대기업·외국계 외 전문업무 종사 중인 직장인'으로 한정했다. 기준란에 '가입 시 외모 및 능력 많이 봅니다'라고 명시하기도 했다.
남녀의 가입기준이 다른 경우도 많다. 남성의 경우 직업이나 신분을 철저히 확인하지만 여성의 가입조건은 '외모 훈훈' 등으로 속칭 '물 관리'에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한국사회 단면 보여줘"
전문가들은 폐쇄적인 커뮤니티 문화가 한국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한국사회에서는 문화활동이 상위 10% 기준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런 '끼리끼리 문화'를 형성해 얻은 인맥 등으로 본인이 얻은 특정 자격에 대해 보상받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다"며 "대중적이면서 동시에 엘리트주의적으로 한국사회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남성은 경제력, 여성은 외모를 보는 등 남성중심적이고 소위 '클럽문화'처럼 변질되고 있다는 점은 다소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도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모임에서 검증할 수 있는 지표가 많지 않으니 직업이나 학벌 등 눈에 보이는 요소들이 작동하는 것"이라며 "온라인 공간이 개방적이지만 동시에 폐쇄성을 함께 갖고 있는 공간이지만 한국사회에서 유독 끼리끼리 문화가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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