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하고 싶었으나 용기 내 찍은 영화
단지 슬픈 게 아니라 응원이 되는 이야기라 선택
촬영 하는 내내 끙끙 앓아, 극중 딸에게 미안
위로 받고, 하루하루 감사함 깨달아
단지 슬픈 게 아니라 응원이 되는 이야기라 선택
촬영 하는 내내 끙끙 앓아, 극중 딸에게 미안
위로 받고, 하루하루 감사함 깨달아
아무리 허구라지만, 누가 자식 잃은 슬픔을 두 번이나 느끼고 싶을까. 특히 ‘밀양’을 연기할 때는 미혼이었지만, 지금은 11살 딸이 있다. 그랬기에 한 두차례 거절했다. ‘밀양’ 조연출 출신이라 예전부터 자신을 언니라 불렀던 이종언 감독의 데뷔작 ‘생일’. 시나리오를 읽은 지인들도 걱정했다.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시나리오에 감명받고 무서웠지만, 용기를 냈다. “마냥 아프고 슬픈 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응원이 되는 이야기라서 출연을 결심했습니다. 바로 감독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시나리오 대한 제 존경의 마음을 담았죠.”
촬영은 예상대로 녹록치 않았다. 영화 찍는 내내 끙끙 앓았다. 전도연은 “촬영 이후 운동을 하러 나갔더니, 근육 상태를 체크한 선생님이 혹시 아이 낳는 신을 찍었냐고 하더군요. 그거보다 더 힘든 신을 찍었다고 말했다”는 웃지 못할 비화를 들려줬다.
‘생일’은 아주 사려 깊고 담담한 어조로 2014년 4월 이후, 남겨진 한 가족과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첫 시작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린 진심이 보편적인 이해와 공감을 끌어내며 관객의 마음을 절절히 울린다.
영화는 비행기 착륙을 앞둔 정일(설경구)이 기내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아들 수호(윤찬영)가 사고로 죽고 한참 뒤에서나 귀국하게 된 정일은 세월호 유가족의 일상을 조심스레 들여다보게 된 관객의 시선과 맞닿아있다.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지만, 큰 내상을 입은 이들에게 그 일상은 결코 녹록치 않다. ‘순남’을 연기한 극중 전도연은 아들 수호를 잃은 슬픔에 미처 딸 예솔(김보민)을 챙기지 못한다. 습관처럼 밥을 차려주고 얼굴에 로션을 발라주지만, 아들 새 옷만 사온다든지, 생선반찬을 먹지 않는 딸에게 반찬투정을 한다고 혼내고 만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딸을 안아준다.
전도연은 “촬영할 때 예솔에 대한 미안함이 너무 컸다”고 회상했다. “제 눈에 순남은 유령 같았습니다. 영혼 없이 떠도는 유령. 문득 문득 정신을 차리고 딸을 챙기죠. 영화에서는 예솔에 대한 순남의 아픔이나 미안함이 잠깐 잠깐 드러나지만, 전 촬영하는 내내 느꼈습니다. 특히 예솔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엄마의 마음을 받아주는 게 더 아프게 와 닿았습니다.”
사실 관객들이 이들의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장면도 대부분 예솔이 등장할 때다. 예솔이 학교에서 갯벌체험에 나가서 막상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일 때, 예솔이가 오빠의 새 옷이 들어있던 쇼핑백에 혹시 자신의 옷도 있는지 슬쩍 확인할 때, 반찬 투정한다고 집에서 쫒겨나 집 앞에서 엉엉 울 때, 큰 아픔을 꾹꾹 누르고 살고 있는 이들의 전쟁 같은 하루가 너무나 아리게 다가온다.
아파트가 떠나가라 엉엉 우는 오열신은 자식 잃은 어미의 고통이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듯하다. 꿈에서 아들의 환영을 본 순남이 주인 없는 물건을 만지며 있는 힘껏 숨겼던 슬픔을 딱 한번 폭발하는 신이다.
전도연은 “매우 부담스럽고 힘들었고 무서웠던 장면”이라고 표현했다. “시나리오에 아파트가 떠나갈 듯 오열한다고 명확히 적혀있었습니다. 슬프게 울어야 해, 그런 생각 자체를 안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카메라가 돌기 전까지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됐습니다.”
출연을 결정하고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카메라 앞에서 느끼는 만큼 연기하려고 한 것”이다. “관객들에게 슬픔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담담히 객관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제가 순남의 감정보다 앞서 나갈까봐 늘 의심하고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후반부 롱테이크로 찍은, 30분에 이르는 수호의 생일장면. 그는 이 장면을 찍을 때 함께 촬영한 모두에게 위로를 받았단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연기를 한다기보다 마치 다큐멘터리 찍듯 같이 아파하고 슬퍼했습니다. 누군가 내 등을 다독여주는 손길이 따뜻했습니다. 서로 나누니까 어려움이 반이 되고 힘이 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딸과 함께 극장에서 다시 영화를 볼 생각이란다. 딸과는 그동안 한국영화를 주로 함께 봤다. '택시운전자'부터 신과함께' 'PMC:더 벙커' '극한직업' 등을 봤단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너무 힘들어 외면하고 싶기도 했지만, 저로선 용기 있게 맞선 부분이 있습니다. 또 연기하면서 아프고 다칠 줄만 알았는데, 오히려 제가 더 위로를 받고, 하루하루의 감사함을 알게 된 작품입니다.”
이날 전도연은 수수한 얼굴로 때로는 눈물을 삼키며 인터뷰에 임했다. 그는 “언젠가부터 아침마다 체중계에 오르던 습관이 없어졌다”며 “가방에 있던 거울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고 변화를 설명했다. 조금 핼쑥해 보인다고 했더니 “아이를 키우면서 보낸 규칙적인 생활 습관 덕분인 것 같다”고 했다.
주름 걱정을 하냐는 질문에는 “신경이 쓰인다”고 인정했다. “그렇지만 딱히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시술요? 그걸 선택하면 다른 부분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네요. 나이는 들고 주름은 늘어날 텐데, 잘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역시 전도연은, 예전에도 지금도, 예쁘다. 얼굴도, 연기도. 배우로 사는 모습도.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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