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법조인]성기문 에스앤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서 있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웹툰 ‘송곳’>
인생 절반의 법관생활을 마치고 1년차 변호사로 다시 출발했다. 법대(法臺)에서 내려 보던 피고인은 법정 안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됐다.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을 뿐인데,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졌다.
34년간 있던 법원을 떠나 올해 1월 새로운 둥지를 튼 성기문 대표변호사(에스앤엘파트너스·66·사법연수원 14기· 사진)를 최근 만났다. 성 변호사에게 법원은 평생을 함께한 터전이었다. 미농지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 판결을 썼던 초임판사시절부터 지방법원의 원장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고뇌와 번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재판이 전부였던 그에게 법정 밖 풍경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변호인은 피고인의 '유일한 구원자'
“법원에 있을 때 피고인은 법정 옆에 있는 ‘문에서 나와 문으로 나가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직접 대면해 얘기하거나 그 외의 모습을 볼 기회는 거의 없었죠. 이 때문에 변호사가 돼서 구치소에 수감된 피고인을 접견 갔을 때 받은 느낌은 정말 ‘문화충격’ 수준이었습니다. 판사석에서 피고인을 내려다보다가 변호인으로서 대면했을 때 받은 감정은 ‘펄펄 살아있는 세계에 들어왔다’는 느낌이랄까요”
법관으로서 오랜 연륜을 쌓아왔지만 여러 피고인들이 갇혀 생활하는 모습은 익숙지 않은 장면이었다. 재판장 시절 재판의 객체였던 피고인이 나만 바라보는 의뢰인이 됐을 때 느껴지는 압박감도 이질적이었다.
“피고인이 자신의 억울한 사정이나 권리를 회복해주는 ‘유일한 구원자’로 저를 대할 때 마치 분쟁의 당사자가 된 것처럼 피고인과 저를 동일시하게 됐습니다. 변호인으로서 사명도 크고, 할 일도 많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 순간이었죠.”
변호인으로서의 새 출발은 기존 형사소송법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 계기가 됐다. 가장 큰 문제로는 너무 쉽게 구속 재판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피고인이 구속되는 순간 재판과정에서 방어권 보장은 힘들고, 검찰과의 대등한 공방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해요. 엄청난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법정 투쟁을 해야 하죠. 수사의 필요상 구속됐더라도 수사가 끝나고 기소가 된 후에는 대등한 당사자로 재판받을 수 있도록 가급적 보석을 허용해 불구속 재판을 받게 하는 것이 인권 보장을 위해 적절하다고 봅니다. 법정구속도 신중하게 운용할 필요가 있어요.”
소액사건을 전담하는 ‘원로법관’ 1기 졸업생으로서 법원이 이 제도를 더 실효성 있게 발전시켜 활용하길 바란다는 점도 강조했다.
“소액사건은 우리 사회 밑바닥에 있는 분쟁을 다루는 생활밀착형 재판입니다. 형식적인 법리나 기존 판례보다는 삶의 경륜이나 지혜, 풍부한 경험을 가진 판사들이 좋은 결론에 이르고, 당사자들을 설득하기도 용이합니다. 다만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다른 법관들의 업무가 과중되지 않도록 원로법관들은 법관 정원에서 제외하고, 임금피크제 방식을 도입해 정년을 늘려 연륜 있는 판사들을 활용하면 좋겠어요. 같은 이유로 일부 형사단독사건도 원로 법관들이 맡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판사, 여론에 흔들려선 안돼"
지금은 비록 떠난 고향이지만, 외부로부터 공격받고 있는 법원에 대해서도 강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판사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면 심각한 위기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사회갈등을 해소해야 할 법원에서 오히려 진보와 보수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어요. 판사가 소신껏 재판할 수 있어야 한데, 정치권을 포함해서 여론도 판사 개인에 대해 공격하고 비난하니 소신 재판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법원이 신뢰를 받지 못하면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어요. 법원에 남아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고 있는 후배들을 보면 자랑스러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성 변호사에게 위기에 처한 사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었다. 얼마 전까지 노(老)법관이었던 이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재판을 하는 판사들이 여론에 흔들려선 안 됩니다. 자기 업무를 회피하거나 시대적 분위기에 영합하는 판결을 해서도 안 됩니다. 판사 스스로가 ‘내 판결이 후세의 역사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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