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대법원 큰 실수 저질러"… 현직 부장판사, 강제징용 판결 비판

이진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31 18:06

수정 2019.07.31 18:06

김태규 부장판사, SNS에 '징용배상 판결 살펴보기' 글올려
"판결문에도 특별한 논리 없어.. 소멸시효 부정은 권리남용" 비판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 뉴시스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 뉴시스
현직 부장판사가 2012년 대법원 강제징용 파기환송심 판결에 대해 "법원은 감당하기 힘든 실수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며 최근 벌어진 한·일 무역분쟁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취지로 강하게 비판했다.

7월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52·사법연수원 28기)는 전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징용배상 판결을 살펴보기'란 글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앞서 2012년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손해를 배상하라'는 취지로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이듬해 서울고법은 대법 파기판결 취지에 따라 일본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고, 약 5년 뒤 양승태 대법원장을 지나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인 지난해 10월이 돼서야 원고 승소 판결이 확정됐다.

당시 하급심(1·2심)은 신일본제철의 불법행위는 인정하면서도 소멸시효 완성 등을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라면 원고 패소한 원심 판단"

김 부장판사는 "나라면 아마 최초 제1심과 제2심 판결처럼 판단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정 소멸시효 기간을 한참을 도과한 시점에서 제기한 사건에서 (대법이) 어떻게 극복했을까 하는 것이 (파기환송) 판결에 관한 소식을 접했을 때 나의 첫 의문이었다"며 "정작 판결문을 찾아본 소회는 '역시 특별한 논리는 없다'는 생각이었다"고 꼬집었다.

그는 "3심이 소멸시효의 벽을 넘어선 논리는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에 반해 권리남용이 되므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지극히 보충적이고 거의 수용하지 않는 신의성실의 원칙을 이유로 소멸시효를 부정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일본 법원의 확정판결에 대해서도 "기판력(확정 판결에 부여되는 구속력)이 발생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법원이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장애도 넘어야만 했다"며 "그런데 우리 대법원은 오사카 고등재판소의 판결이 공서양속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헌법을 사적 분쟁의 공서양속에 관한 판단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이 특이할 뿐만 아니라 그 근원을 헌법의 개별규정이 아닌 헌법 전문에서 찾았다는 점이 더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2012년의 대법원 판결은 원고들의 청구가 넘어야 할 주요 장애요소에 대해 신의성실·권리남용·반사회질서 등의 법리를 통해 제거하고 있다는 느낌"이라며 "이러한 법리의 남용은 그 하나의 사건에서는 법관이 원하는 대로 판결을 할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다른 민법의 일반조항들을 무력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목적 위한 도구로서 판결 피해야"

그는 "민법의 법조항과 법리들을 보충적인 법리로 허물어버리면 앞으로 많은 소송당사자들이 법원을 찾아와 자신들에게도 이러한 법 적용을 하는 특혜를 달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판사는 일을 하면서 안타깝고 답답하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경우를 상시로 경험한다.
그런 직업이다"며 "그렇지만 법이 있고, 또 그것은 자의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되는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때로는 야속한 소리를 듣고 때로는 원망도 들으면서 법을 적용시켜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논란이 되는 1965년 청구권협정에 대해서도 "옳은 것이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역사학계·정치권·국민 공론의 장 등에서는 논의가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적어도 사법부만큼은 그 정치적 의미에 천착하려 하기보다 그 해석이 법의 일반원리에 위반되지 않게 하려는 데 노력을 집중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우리가 사법판결을 무기로 하면, 비록 가능성은 낮지만 일본의 사법부도 같은 방법을 쓸 수도 있다"며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서 판결이 활용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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