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민간 싱크탱크인 여시재에 따르면 최근 일본 도쿄에서 ‘한미일 협력의 지속가능한 번영과 미래’ 관련 세미나 일환으로 원로 반도체 전문가인 하마다 시게타카 박사(94)와 간담회를 마련했다.
시게타카 박사는 NTT도코모 임원이던 1980년대 후반 고 이병철 회장과 인연을 통해 한국에 반도체 기술 이전에 큰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도 자서전에서 그를 ‘삼성 반도체의 은인’으로 여러 번 언급했고, 호형호제하던 사이라고 밝힐 정도였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광재 여시재 원장과 양향자 전 한국공무원인재개발원장 등이 10여명의 한국 참석자가 자리했다.
다음은 여시재가 진행한 간담회 중 주요 일문일답을 간추렸다.
-일본의 이번 수출 제재 조치가 한국이 미래산업으로 키우려 하는 시스템 반도체를 타깃으로 한다는 시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본의 일반 사회에 그런 인식은 없다. 이번 사태는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이며 반도체 산업에 영향을 끼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한일 기업들이 구축해온 반도체 생산 분업체계를 절대 망가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사태는 징용자 문제에 대해 일본의 중재위원회 구성 제안에 대해 한국이 계속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내놓을 카드가 없는 일본이 ‘안전보장’ 문제를 꺼내든 것 아닌가 한다. 일본의 국민들 사이에 일본 정부가 좀 과하게 반응한 것 아니냐는 정도의 인식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대체로는 한국 측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가) 깊이 있게 생각하고 내놓은 행동이라고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수출 중단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일 반도체 분업 체제의 붕괴를 포함한 여러 영향에 대해 일본 정부는 충분히 통제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보는가.
=현역을 떠난 지 오래된 입장이기는 하나 반도체 기술자로 말씀드리자면 반도체 기술은 진보와 변화가 매우 빠른 산업이다. 일본은 D램을 한국에 추월당했고, 낸드플래시 메모리도 그렇다. 한국에서도 과거 이번에 문제가 된 3개 품목을 국산화하려는 논의가 있었다. 저는 당시 한국을 위해 국산화를 반대한다고 말씀드렸다. 첫째 시간을 맞출 수 없다는 것이었고, 둘째 기술이 너무 빠르게 진보하기 때문에 투자를 한다면 다음 단계의 미래를 위한 기초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는 앞으로 (이번 일을 겪어나가면서) 새로운 기술 속에서 한일간 반도체 분업체계가 다시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번 사태가 장기화되어서 한국 반도체가 타격을 입을 경우 주도권이 중국이나 대만 같은 다른 나라로 넘어갈 가능성은 없는가.
=중국은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대만이 주도권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이 앞으로 시스템 반도체를 육성하려 하는데 과연 경쟁력은 있다고 평가하는가.
=한국은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은 제조업에 큰 재능을 가진 나라인만큼 질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삼성이 반도체 산업에서 성장하게 된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 나라에 가서 기술이전에 협력했지만 자력갱생을 추구하는 나라도 있었다. 삼성은 (이와 다르게) 공장 자체를 통째로 가져갔다. 이게 훨씬 빠르다. 공장 자체를 가져다 두고 생산율이 높아지면 이후 연구개발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삼성이 성공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간을 못맞추게 되고 따라갈 수 없었다.
-지금 삼성의 고민이 깊을 것이다. 조언을 해달라.
=삼성이 현재 수입 금지를 당한 것이 아니다. 우대 조치가 없더라도 정식 절차로 수입 신청을 한다면 일본이 거절할 명분이 없다. 아무래도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정식 절차를 밟아 공공연히 수입 신청을 진행해서 실질적으로 영향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 정부는) 우대조치에서 삭제하는 것일 뿐 다른 나라와 똑같이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공급에 실제로 차질이 생긴다면 이 부분에 대해 한국 정부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반도체 분업체계 유지를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아베 총리에게는 지금의 한일 분업체계를 수단으로 쓰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수출 중단은 안된다고 진심으로 말하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집과 이상, 신념을 가진 분인 것 같다. 모쪼록 현실을 잊어버리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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