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 금속가공 소상공인 거리
■국산화 1세대 '현재진행형'
"수입대체는 수없이 많이 해줘서 갑자기 말하려니 떠오르는 게 없다"고 유태호 일성정밀 대표는 말했다. 유태호 대표가 주로 다룬 기계는 방적기·방직기다. 실이 고르게 감길 수 있게 하는 와인딩 부품이나 베벨기어를 주로 국산화했다. 그는 "당시 도면이란 게 딱히 없어서 직접 가서 망가진 부분을 확인하고 재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며 "(수입대체를 원하는) 기업들과 소공인들을 연결해주는 '기료상'들도 당시에는 참 많았다"고 설명했다.
정세용 우영기계 대표는 20년 전 한 대에 850만원가량 하던 독일제 전동 그리스펌프를 수입, 국산화하고 일부 기능을 개선해 350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 제품은 중간업체를 통해 현대제철, 포스코 등에 납품된다. 정 대표는 "국산화는 어차피 모방에 기초하는데, 제대로 하려면 절차가 있다. 일단 제품을 분해하고 소재를 분석한 뒤 정확한 치수를 재 똑같이 옮겨내야 한다. 근데 나중에 만들고 나면 치수상으로는 똑같은데 작동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때 동원되는 마지막 과정이 바로 '노하우'다"라고 전했다.
문래동 소공인들의 국산화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문래동 소공인들이 모여 만든 '서울소공인협회'는 최근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의뢰로 '삼다수' 제조라인을 국산화하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기존 생산라인은 독일제 기계로 구성돼 부품이 마모되거나 고장 날 경우 조달에 시일이 걸리곤 했다. 지난해만 120~130개 품목을 작업, 2억5000만원 규모의 매출을 냈다. 한부영 서울소공인협회 대외협력단장은 "지금까지 삼다수 제조라인의 40~50%가 국산화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올해는 50개 품목을 국산화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기술보호장벽 높이는 선진국
공작기계 분야에도 국산화 과제는 쌓여 있다. 사소하게는 측정기의 일종인 디지털 버니어 캘리퍼스도 일본의 '미쓰도요' 제품이 주로 쓰인다. 유대수 대표는 "부품이 완제품과 결합할 때 길이와 너비, 모양이 꼭 맞게 들어가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정확한 측정이 중요한데 일본 제품이 신뢰성이 높다"고 말했다. 극한환경에서도 견디는 특수 볼트도 국산화 과제 중 하나다.
점점 과거와 같은 '리버스 엔지니어링(완성된 제품을 분석해 역설계하는 방식)'을 통한 국산화는 어려워지고 있다. 원천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보호장치가 곳곳에 탑재돼 있어서다. 이를테면 제품의 핵심 부품이 적용된 부분을 분해하면 그 부분이 손상되도록 하거나, 엑스레이나 초음파 등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도록 방해전파를 내는 방식이다. 유태호 대표는 "억지로 분해할 수 없도록 제품 자체가 파손되도록 하는 경우가 많아 진짜 복사하고 싶은 기술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기계분야 자체조달률은 61%에 불과하다. 지난 2016년 기준 볼 베어링과 공작기계용 제어반(CNC) 분야에서 일본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각각 96.5%, 58.4%에 달했다. 기계·부품을 만들기 위해 일제 기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용현 서울소공인협회 회장은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조치가 우리 소공인들에게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ktop@fnnews.com 권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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