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세계화에 앞장서고 동맹간 중재에 노력하며 세계를 이끌었던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이후 세계무역기구(WTO)를 공격하고 주요 동맹인 한국과 일본간 분쟁을 불구경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세계 질서 붕괴에 앞장서고 있음을 나타내는 징표로 해석됐다. 세계는 1970년대 초반 "헐값 석유의 시대는 끝났다"는 사실을, 80년대초에는 "나라도 망할(디폴트) 수 있다"는 점을, 2008년에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과 글로벌 은행들이 안전하지 않다"는 현실을 깨달았고, 이제는 세계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전세계 곳곳에서 국가간 시장개방에 공동노력한다는 다짐은 이제 휴지조각이 되고 있고, 경제주체들의 움직임도 달라지고 있다. 불안해진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돈을 옮기면서 금, 채권이 뛰고, 주식은 하락하고 있다. 기업들은 투자를 재고하고 있고, 정책담당자들은 상황에 대처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련의 이같은 움직임은 경기침체 위험을 높인다. 세계화 엘리트이자 이제 마지막 기술관료로 남은 중앙은행들만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초저금리 상황에서 마땅한 대응수단이 없어 경기침체를 얼마나 막아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세계 경제를 관통하던 세계화가 강한 역풍을 맞고, 기존질서 해체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3년전부터다. 2016년 중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는 국수주의, 포퓰리즘이 기존질서를 뒤엎고 있음을 보여주는 첫번째의 강력한 신호였고, 그해 11월 치러진 미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승리하면서 포퓰리즘, 국수주의는 세계를 이끄는 주된 동력으로 자리잡게 됐다.
트럼프 당선 이후 세계 곳곳에서 포퓰리즘 정권이 잇따라 들어섰고, 각국간 충돌도 잦아지고 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불가능할 것 같았던 트럼프의 당선은 초반에만 해도 세계화, 자유무역, 통제를 벗어난 이민의 과도한 부작용 완화를 위한 반작용 정도로만 간주됐다. 그렇지만 지난 몇달 새 이같은 기대는 희망사항에 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포퓰리즘, 국수주의 부상이 그저 세계화 부작용을 치유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세계화를 아예 송두리째 뽑아버릴지 모른다는 공포다.
영국은 오는 10월31일 브렉시트 마감시한이 되면 EU와 브렉시트 협상에 합의가 이뤄졌건 말건, 경제에 어떤 충격이 있건, 반드시 EU를 탈퇴한다는 보리스 존슨이 총리가 됐다. 지난해 중국에 대한 관세부과를 시작으로 무역전쟁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은 날이 갈수록 보호주의 행보를 강화하며 독주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는 지금까지의 관행과 국제기준들을 부정하고, 즉흥적이고 독단적인 무역정책을 강행하고 있고, 중국도 이에 보복으로 맞서면서 전세계 경제가 혼란으로 빠져드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가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연정을 해체하고, 홀로 정권을 잡기 위해 정부 불신임안을 제출한 상태다. 미국의 동맹 한국과 일본이 무역전쟁 일촉즉발 상태에 있지만 트럼프는 중재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WSJ은 트럼프 집권 후 2년 동안은 그의 감세와 규제개혁이 보호주의 부작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였지만 이제 그 약발이 다 했다면서 기업과 투자자들은 국제 통상을 관장하는 어떤 규정도 확신할 수 없게 되지 위험 투자에서 발을 빼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됐다.캘리포니아대(버클리)의 배리 에이켄그린 경제학교수는 무역정책이 전세계 경제신뢰도에 주된 부담요인으로 작용하는 한 중앙은행들은 "그저 (세계경제의 상처를) 지혈하는 것 외에는 달리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비관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