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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걸음] "지금이 시작할 때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20 15:27

수정 2019.08.20 15:32

[이구순의 느린걸음] "지금이 시작할 때다"
USB에 담아 지갑에 넣고 다니다 가끔 슬쩍 꺼내 보는 동영상이 하나 있다. 2011년 파이낸셜뉴스가 주최한 모바일코리아포럼에서 '국내 모바일 생태계 구축을 위한 조건'이라는 주제로 장병규 본엔젤스 벤처파트너스 대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신철호 포스닥 대표의 토론 영상이다.

2011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모바일 열풍이 자리를 잡는 시기였다. 미국에서 2007년 출시된 아이폰을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에야 판매를 허용하면서 한국의 모바일 산업이 세계시장의 흐름에 뒤쳐졌다는 비판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모바일 사업을 해보겠다고 뛰어들었던 스타트업들은 2년이나 늦은 정책시계 때문에 시장에 서비스도 내놓지 못하고 파산하는 일도 심심찮던 때다.
그나마 카카오톡이 국민 메신저로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에도 성공 가능성 있는 모바일 사업이 있다고 체면치레를 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런 시절 김범수 의장이 공개석상에서 후배 스타트업 대표들에게 얘기했다. "한국은 모바일도 2년 이상 뒤졌고, 누구에게도 스타트업을 권유하기 어려운 암울한 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시작할 때라고 말하고 싶다. 새로운 기회가 왔다."
김 의장은 당시 모바일이 바꿔놓을 비즈니스 환경과 사업규모를 얘기했다. 좁은 국내시장에서 경쟁하던 과거형 사업들과달리 모바일 사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모든 기업들이 모바일 환경을 갖추게 돼 새로운 시장을 현성하게 될 것을 기회요인으로 꼽았다.

요즘 블록체인 업계에 한숨이 늘어간다. 암호화폐공개(ICO)와 초기 투자금으로 호기롭게 블록체인 서비스를 개발한 스타트업이 막상 시장 문앞에서 규제의 벽에 부딪쳐 좌절했다는 소문. 2년여 개발한 서비스를 마케팅할 자금이 없어 직원들을 모두 내보냈다는 어떤 기업 얘기. 스타트업 CEO 누구는 우울증에 걸렸다는 뒷얘기.뒤숭숭한 소문에 다른 스타트업들도 활기를 잃어간다며 한숨쉬는 소리.

'옛날에는 더했어'하며 얘기를 시작하면 '꼰대'라고 따돌림 당하는 시절이라지만 그래도 해봐야겠다.

8년전에도 신기술로 사업을 해보겠다고 덤비는 호기는 힘들었다. 그 때도 정부는 창업을 장려했지만 도움은 커녕 발목만 잡았었다.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말이 그 때 나왔다. 그럼에도 성공의 기회는 어려움 옆에 붙어있었다. 지금 한국의 대표기업이 된 카카오도 100여가지 서비스 아이디어 중 고작 세가지 밖에 실현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며 3년을 보냈다고 한다.

매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가 내년에는 블록체인관을 만든다고 한다.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말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쓰겠다는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늘어가고 있다. 블록체인은 국경없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아직 이 시장에는 독보적인 1등이 없어 도전의 가치가 있다. 김 의장이 말한 모바일 산업 초기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2년 넘게 정책부재와 시장의 어려움에 지쳐가는 블록체인 업계가 어려움 옆에 붙어있는 성공의 기회를 보며 힘을 냈으면 한다. 지금이야말로 힘내서 시작할 때 아닐까.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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