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지방사무 대개편 <上>
지역이 잘하는 571개 사무 권한, 정부에서 지자체로 이양 추진
'지방이양일괄법' 연내 처리 전망
지역이 잘하는 571개 사무 권한, 정부에서 지자체로 이양 추진
'지방이양일괄법' 연내 처리 전망
#. 전북 익산시는 여름이 다가오면 비상근무 체제에 돌입한다. 불볕더위로 기온이 올라가면 지역 내 산업단지와 분뇨처리시설 등에서 배출되는 악취로 민원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익산시 주민들은 2013년 2월 대책위를 결성해 문제 해결에 목소리를 높였고 10개월만인 그해 12월 전북은 제1·2산업단지를 악취관리지역으로 지정했다. 악취를 대폭 줄인 것은 물론 총 28억원의 시설개선 투자도 이끌어냈다.
전북이 익산시 악취 문제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앙정부의 권한이양'이 큰 힘이 됐다. 환경부는 2004년 '대기환경보전법' 중 악취관리와 관련된 조문을 분리해 '악취방지법'을 만들면서 환경부 장관이 갖고 있던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넘겨줬다. 악취문제를 인식한 전북이 곧장 실태조사에 나섰고 10개월 만에 해결책을 찾아냈다..
만약 권한이 여전히 환경부에 있었다면? 피해 주민들과 지자체 공무원들은 중앙부처를 쫓아다니며 읍소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빽빽한 업무의 틈바구니 속에서 중앙부처 공무원이 자신의 일처럼 익산시의 문제를 면밀히 살펴보긴 어려운 일이어서 문제해결에 긴 시간이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
■지역이 잘하는 571개 사무 이양
정부는 2018년 이같이 지자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업무의 권한을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넘기기 위한 '지방이양일괄법'을 만들었다. 19개 중앙부처 소관의 법률 66개를 일괄 개정하는 방식이다. 총 571개 사무가 대상이다. '사무'는 크게 '국가사무'와 '지방사무'로 나뉜다. 국가가 책임·권한을 갖는 업무, 지방이 책임·권한을 갖는 업무로 이해하면 쉽다. 이중 '국가→광역·기초지자체' 사무이양은 492건(57.8%), '광역지자체→기초지자체' 사무이양이 79건(13.8%)이다. 가령 지방항만의 개발·관리 업무는 국가→광역 시·도로, 100만㎡ 이상 물류단지 지정·고시 권한도 국가→광역 시·도에 넘겨주는 식이다. 중앙정부와의 협의해야만 했던 항만과 대규모 물류단지를 지역 실정에 맞게 스스로 판단해 건설할 수 있게 된다. .
인력·예산 지원대책을 마련한 것도 특징이다. 업무만 내려 보내고 일할 사람과 인건비·업무추진비 등이 뒤따르지 않으면 권한없이 책임만 떠넘기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서다. '지방이양비용평가위원회'를 설치해 각 권한 이양에 따른 인력·비용을 산정토록 했다.
■"중앙정부는 기획·조정·관리 집중"
사실 중앙정부의 권한이양 작업은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속돼왔다. 현재 지방에 적합한 사무를 발굴 중인 자치분권위원회는 2000년부터 지방이양추진위원회,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등 이름을 달리해 지속적으로 이양작업을 추진해왔다. 지금까지 총 3101건의 지방적합 사무를 발굴했다. 이들 사무의 권한을 이양하려면 각 부처가 관련 법률을 개별적으로 바꿔야 하는데 강제성이 없는 탓에 부처에서 버티면 방법이 없다. 실제 3101건 중 2349건은 이양됐지만 나머지 752건은 각 부처의 비협조로 아직도 중앙이 권한을 쥐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자치분권위원회는 752건의 중요도를 가려 총 571개 사무에 해당하는 법률 66개를 일괄개정하는 '지방이양일괄법'을 제정한 것이다. 법이 통과되면 각 부처의 해당 법률들은 동시에 자동 개정된다.
연세대 김남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전체 법령을 전수 조사하면 총 4만여건의 사무가 있는데 아직도 국가사무가 더 많다"며 "지방자치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많은 법령들이 국가가 주도하게 돼있다. 국가는 기획·조정·관리 기능에 집중하고 법 집행은 시·도 이하 단위에 맡겨야 진정한 지방자치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회서 세차례 무산
법안은 아직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2004년·2010년·2014년 세 차례에 걸쳐 지방이양일괄법 제정을 추진했지만 '상임위 소관주의'에 막혀 번번이 통과가 좌절됐다. 국회는 환경부·노동부 소관 법률은 환경노동위원회가, 국토부 소관 법률은 국토교통위원회가 각각 담당하는 식으로 구성돼 법률 66개를 한꺼번에 고치는 법안을 심의할 곳이 없다는 논리다. 이번 정부 들어 지방분권을 국정과제 전면에 내세우면서 '국회 운영위원회'가 법안을 심사키로 하면서 국회 통과에 청신호가 켜졌다. 각 상임위가 소관 법률을 검토하고 운영위원회에서 최종 법안심사 후 처리하는 방식으로 현재 본위원회 상정만을 남겨뒀다.
올 연말 법안이 통과되면 지방지차제의 실질적 토대 마련을 위한 '일괄법'이 헌정 사상 최초로 제정된다. 이재관 행안부 지방자치분권실장은 "지방이양일괄법은 기존 개별 법률 중심의 이양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 지방권한 확대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법안"이라며 "연말 정기국회에서 법안이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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