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시설 BF(배리어프리)인증에도 시각장애인 불편 여전
일부 기업 '말 안 되는' 점자 붙여놓고 "사회공헌" 홍보
점자 표기, 규격 의무화 조항 없어 '캄캄한' 시각장애인
"최소한의 의무조항 골자로 한 법 개정 절실"
일부 기업 '말 안 되는' 점자 붙여놓고 "사회공헌" 홍보
점자 표기, 규격 의무화 조항 없어 '캄캄한' 시각장애인
"최소한의 의무조항 골자로 한 법 개정 절실"
[파이낸셜뉴스] 한국 사회가 시각장애인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 점자 도입 확대를 위해 공공 시설물 인증제도 등이 운영되고 있지만 제대로 된 검수와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민간의 영역에선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시각장애인들이 읽을 수 조차 없는 점자를 붙여놓고 보여주기식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일부 기업들의 행태는 시각장애인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써놓으면 뭐합니까? 못 읽어요"
1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등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시행된 'BF(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arrier Free)인증'이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하고 있다.
BF인증은 공공시설물 건설 시 장애인 이용자들을 위해 각종 편의시설을 마련해놓도록 한 인증제도다. 그러나 지하철역과 기차역, 관공서 등 BF인증을 통과한 여러 공공시설의 점자들이 제대로 표기돼 있지 않거나 관리 미흡으로 심하게 훼손돼 시각장애인들의 불편을 야기하고 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김대근 사무처장은 "지하철역과 기차역 등 교통 편의시설 점자들이 읽기 힘들 정도로 훼손돼 있는 경우가 많고 지자체에 시정을 요구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이 다반사"라며 "심지어는 국회 의원회관 화장실에도 점자가 거꾸로 붙어있는 등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의 경우 그나마 사정이 낫다. 민간의 영역으로 눈을 돌리면 시각장애인들의 불편은 더욱 커진다. 국민권익위원회 등에서 의약품과 생활용품 등에 점자표기를 권고하고 있지만 표기되지 않은 상품이 훨씬 많다. 또 표기가 됐다고 해도 제대로 읽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명확한 점자표기 기준에 따라 점자가 새겨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강제력을 지닌 기준이 없어 '없느니 못한' 점자들이 판을 친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다른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점자를 표기해 놓고 '사회공헌 활동을 했다'며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일부 기업들을 보고 분통이 터졌다"고 토로했다.
■"최소한의 의무 조항 필요"
비단 제조사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내 한 주류업체의 경우 시각장애인 연합회의 검수를 받고 제대로 된 점자를 도입했지만, '점자로 인해 외관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비장애인 소비자들의 어처구니 없는 민원으로 도입을 중단했다.
점자를 표기하는 타공기계 제조사들에 대한 아쉬움 섞인 목소리도 이어졌다. 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는 "국내에서 공신력 있는 검증 과정을 거치고 제대로 된 점자를 새겨넣을 수 있는 타공기 제조 업체는 사실상 단 한 곳"이라며 "그마저도 해외 의약품 제조 업체들만이 해당 회사의 기계를 이용하고 있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정책들이 '권고사항'으로 그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이같은 일들이 계속해 반복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입법을 통해 보다 체계적이고 강제력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약품 점자표기 의무화 법안 등 점자 표기 관련 각종 법안들이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계류와 폐기를 반복하는 상태다. 지금도 13개 상비의약품 만이라도 점자 표기를 의무화하자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상태지만, 20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통과를 낙관하는 이는 많지 않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김훈 박사는 "소비자안전기본법, 식품위생법, 점자법 등 많은 법안들이 있지만 시각장애인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선 입법을 통한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의무 조항이라도 들어가야 하는데, 너무 많은 부분에서 소외를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jasonchoi@fnnews.com 최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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