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소기업

가업승계, 부의 대물림 아닌 지속경영·장수기업의 밑거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01 16:13

수정 2020.01.01 19:14

가업상속공제 너무 까다로워
이용실적 7년간 年 68건 불과
상속세 마련 위해 회사 팔기도
일본은 법·세제·금융지원까지
가업승계, 부의 대물림 아닌 지속경영·장수기업의 밑거름

가업승계, 부의 대물림 아닌 지속경영·장수기업의 밑거름

'10개 vs. 3만개.'

한국과 일본의 100년 이상 기업 현황이다. 두 나라의 차이를 가른 건 제도보다도 인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는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인식해 높은 상속세 부담 등이 주된 이슈로 제기되는 반면 일본의 경우 '후계자 부재'가 기업승계 논의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장수기업을 키우기 위해 법·세제, 금융지원 등을 아우르는 종합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우리는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인식한다.
아스팔트·콘크리트 품질관리용 시험기기 제조·판매사인 흥진정밀 정태련 대표는 어렵게 입사한 외국계 은행을 그만두고 가업을 이어받기로 했다. 1974년 설립된 흥진정밀은 2010년을 전후해 창업주의 건강이 악화되고, 매출도 지속적으로 줄었다. 창업주는 힘든 제조업을 아들에게 넘기기보다는 회사를 매각하는 방법을 모색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정 대표도 선대 가업을 유지하겠다는 사명감으로 기업을 이어받기로 했다.

정 대표는 "우수한 직업을 가진 2세들이 이를 포기하고 가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며 "인력고용 유지와 회사 유지에 도움이 된다. 가업을 힘들게 이끌어가고 있는데 부의 대물림이라는 부정적 인식으로만 비치는 것은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드라마와 일부 재벌 사례로 인해 가업을 잇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는 것 같다"며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가업승계를 운명으로 받아들여 더 잘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업을 잇는 사람들 중에는 어릴 때부터 공장에서 자라며 꿈을 키우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가업상속공제 있어도 무용지물

기업인들 사이에는 가업승계 제도가 너무 엄격해 차라리 활용하지 않겠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태다.

실제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업력 10년 이상 중소기업 대표 및 가업승계 후계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9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 결과 가업승계 계획이 있는 기업 넷 중 하나는 정부의 가업상속공제제도를 활용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표 지분율, 고용유지 등 사후요건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속세 부담 완화를 위한 가업상속공제 건수는 지난 7년간 연평균 68건에 불과한 등 이용실적이 거의 없었다.

가업상속공제는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영위한 중소기업을 상속인에게 승계하는 경우 가업상속재산가액 중 업력에 따라 최대 500억원까지 공제해주는 제도다. 연매출 3000억원 미만 기업이라는 기준이 있고 상속 후 10년 동안 지분, 자산, 업종, 고용 등에 대한 사후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 애로로 꼽힌다.

이 같은 제도의 엄격성은 정부 철학 부재에서 나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가업승계를 통제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장수기업을 키워내는 문화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의견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세금 측면에서만 봐도 상속세를 걷는 것보다 기업이 영속하면서 내는 법인세가 훨씬 크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율촌 가업상속팀장 전영준 변호사는 "우리 가업승계제도는 사회적으로 유익한 기업활동을 유지·존속시킨다는 것이 그 근본취지라는 점이 간과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의 죽음이란 예측 불가능한데 가업을 물려주려는 창업주가 사망하면 요건이 되지 않는다"며 "가업승계를 잘 준비하던 사람이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오히려 회사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 나오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국가적 장수기업 키워야

최근 일본에서는 후계자를 찾지 못해 흑자 상태에서도 폐업하는 기업이 많아지면서 기업승계가 사회 이슈로 대두됐다. 일본 정부는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2025년까지 고용은 약 650만명, 국내총생산(GDP)은 약 22조엔 감소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향후 10년을 사업승계 실시 집중기간으로 정하고 법 개정을 통한 세제지원 등 정책지원을 더욱 강화했다. 상속세 납부유예 비율을 기존 80%에서 100%로 확대하고, 납부유예 대상이 되는 주식 수 상한선을 철폐하는 등 상속세 납부유예제도 적용요건을 완화했다.
또 기업승계 문제를 사전에 파악하는 사업승계진단을 연 5만건 이상 실시하고, 가업승계 후보를 소개하는 매칭도 주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기업의 세대 간 이전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최근 일본의 사례를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KDB미래전략연구소 박희원 전임연구원은 "일본은 적절한 후계자를 찾지 못한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M&A에 주목해 가업승계형 M&A가 증가하고 있다"며 "국내 역시 대기업 역할 강화, M&A 중개인프라 강화 등을 통한 중소기업 M&A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psy@fnnews.com 박소연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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