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이런 글을 쓴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 스스로 생각하는 청중이 되자고 다짐하기 위함입니다. 올 한 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자는 얘깁니다. 비단 위에 예로 든 경우만이겠습니까. 특정 진영의 문제만도 아닙니다. 진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어서 사람들의 생각에 혼란을 일으키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동하는 일은 고금동서를 막론합니다. '얼른 들으면 옳은 것 같지만 실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억지로 둘러대어 합리화시키려는 허위적인 변론을 일컫는 말.' 이런 말을 하는 궤변론자들이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활약했다는 것 아닙니까. 지금은 이른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 사람들은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진실처럼 보이는 것 또는 진실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는다는 얘깁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식민지 이후 국가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보수 권위주의 정권이 오랜 시간 계속됐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전혀 다른 방향의 진보 국가주의가 득세하고 있습니다. 경제생활뿐 아니라 개인 삶의 모든 영역을 국가가 간섭하려 합니다. 근대성의 기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를 체득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그 결정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건전한 개인주의가 발달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지요.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그러나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영국인의 중산층 기준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이렇듯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개인의 발견을 올 한 해의 과제로 하면 좋겠습니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가득 찬 국민으로 이뤄진 나라는 바로 설 수 없습니다. 상대가 의견은 다르지만 거짓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어야겠지요. 중요한 건 자신의 생각, 자신의 관점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역량을 기르는 것입니다. 집단적 사고에서 벗어나 나만의 생각이 가능할 때 비로소 우리는 상대를 인정하고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선거를 앞둔 진영 정치의 광풍에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일 것입니다. 고 함석헌님이 오래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에서 갈파한 게 바로 그것 아니겠습니까. "그리하여 네가 되어라. 그래야 우리가 하나가 되리라."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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