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비상 대비" "노동권 침해"… 화물·항공 파업 ‘재난규정’ 논란

안태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15 17:27

수정 2020.04.15 17:27

행안부 ‘재난상황 보고…’ 신설에
화물·항공계 집단 업무거부 포함
노동계 "노동3권 부정하는 발상"
정부가 화물차운송업, 항공업 종사자의 파업을 '재난 상황'에 포함시켜 파장이 예상된다. 사진은 지난 9일 화물연대 제주지부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 분회가 무기한·전면 총파업에 돌입한 후 제주항 앞에 BCT 화물 차량을 멈춰 세운 모습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제공
정부가 화물차운송업, 항공업 종사자의 파업을 '재난 상황'에 포함시켜 파장이 예상된다. 사진은 지난 9일 화물연대 제주지부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 분회가 무기한·전면 총파업에 돌입한 후 제주항 앞에 BCT 화물 차량을 멈춰 세운 모습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제공
사회적 갈등인 파업을 국가 재난상황으로 볼 수 있을까.

정부가 화물차운송업, 항공업 종사자의 파업을 '재난 상황'에 포함시켜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노동계는 파업을 재난으로 봐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이라는 이유에서다. 반면 정부는 비상 상황에 대비하자는 취지일뿐 파업 자체를 재난으로 규정한 건 아니라는 답을 내놨다.


■행안부 "화물차·항공사 업무거부, 재난보고해라"

15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최근 '재난상황의 보고 대상 지정 고시'가 신설됐다. 재난이 발생하면 기초 지자체장 등은 즉시 행안부에 보고해야 한다. 2014년 마련된 재난안전기본법 제20조가 근거다. 하위법령인 시행규칙에 13개 재난상황을 정해두고 보고토록했다. 산불, 감염병, 사망 3명 이상 교통사고 등이다.

그 밖에 재난상황은 행안부 장관이 '고시'로 정하도록 해뒀는데 최근에서야 이를 마련한 것이다. 한파, 가뭄, 산사태, 가스유출 등 시행규칙에 담지 못한 22개 목록이 추가됐다.

문제는 화물운송업, 항공업 종사자의 파업도 조항에 담겼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문구는 △18.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른 운수종사자가 집단으로 화물의 운송을 거부하는 행위 △19. 항공안전법에 따른 운항승무원 및 객실 승무원의 집단 업무 거부에 의한 항공기 운항 중단이다.

'집단 거부'라고 적었지만 사실상 노동조합의 파업을 의미한다.

■파업이 재난?… "초헌법적 발상"

노동계는 파업을 재난으로 규정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우지연 변호사는 "헌법상 노동 3권을 부정하는 초헌법적 발상"이라며 "재난안전법 시행령에도 '쟁의행위는 재난이 아니다'라는 조항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재난사태 선포 대상을 정의한 시행령 44조에 '쟁의행위로 인한 국가기반시설의 일시 정지는 제외한다'고 돼있다.

이같은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철도파업 때 정부는 군 병력을 투입하면서 그 근거로 '재난안전기본법'을 내세웠다. 파업을 사회재난으로 해석한 것이다. 당시 국민안전처가 철도파업은 사회재난으로 보기 어렵다는 공식입장을 내기도 했다. 안전처는 현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의 전신이다. 결국 작년 3월 철도노조가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필수유지업무를 준수한 파업을 사회재난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다. 유사한 사례가 작년 7월에도 있었다. 부산시가 부산지하철 노조의 파업 사실을 '재난문자'로 알리면서 논란이 일었다.

■사회적 갈등, 재난으로 분류하면 안돼

행안부는 파업 자체를 재난으로 본 건 아니라고 해명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파업 때문에 국가기반체계의 마비가 왔을 때 준비, 대응을 위해 보고 하라는 의미"라고 답했다. 관련 전문가들도 재난 관점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익명을 원한 재난전문가는 "사회적 여파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19처럼 경제적 측면이 재난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커지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행안부 해명이 불충분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고시 제목이 '재난상황'으로 명확하게 쓰여 있는데도 재난으로 보지 않았다는 답변이 언어도단이라는 지적이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지순 교수는 "파업은 사회적 갈등을 재대로 풀지 못한 결과"라며 "외부 요인에 의한 재난으로 분류할 게 아니라 사회적 갈등에 맞는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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