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단독] WHO 국제회의, 한국만 16년 불참 [김기자의 토요일]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20 10:30

수정 2020.06.20 10:30

이달 열린 제9회 국제간호조산회의 한국 불참
9회 모두 불참 드러나··· 주요국 다수 참석
지난해 참석 약속하고도 '불참'에 아쉬움
복지부 '일정 조정에 어려움 있어' 해명
[파이낸셜뉴스] 전 세계 간호정책 총괄 공무원이 모두 모이는 국제회의에 한국이 단 한 차례도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아시아 주요국 대부분이 간호정책 전담 직제를 두고 있는 반면, 한국은 관련 정규 부서가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해 대한간호협회가 문제를 제기해 간호정책 TF팀이 꾸려졌음에도 올해 열린 국제회의 역시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코로나19 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응한 한국 보건의료의 이면에는 국제적 표준인 간호정책 전담 부서조차 없는 열악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WHO 홈페이지에 게시된 국제간호조산회의 관련 공지. 5월 13일 올라온 게시글엔 이달 16일부터 20일까지 관련 회의가 진행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WHO 홈페이지 캡처.
WHO 홈페이지에 게시된 국제간호조산회의 관련 공지. 5월 13일 올라온 게시글엔 이달 16일부터 20일까지 관련 회의가 진행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WHO 홈페이지 캡처.

■보건복지부, WHO 국제회의 9회 연속 불참

20일 WHO(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올해로 9회째를 맞은 국제간호조산회의(Global Nursing & Midwifery Triad Meetings)에 한국이 단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WHO 주재로 2년마다 열리는 이 회의는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9번째 회기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 한국 대표부가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간호조산 부문을 책임지는 세계 각국 대표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향후 전 세계적 보건의료 정책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에 한국 대표가 빠졌다는 점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있다. 코로나19 창궐로 감염병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가 논의됐고 향후 보건의료 정책 설계에 참고할 만한 각국 사례가 언급됐음에도 함께 의견을 나눌 기회를 놓친 것이다.

특히 올해는 WHO 지정 '간호사와 조산사의 해'로 특별한 의미까지 있어 더욱 큰 아쉬움을 자아냈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에 불참 이유를 문의하자 일정 조정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해당 회의를 참석하기 위해선 세부 일정이 확정돼야 하는데 (WHO에서) 너무 늦게 저희 쪽에 알려줬다”며 “참석여부를 정하고 통역에 대한 협조요청을 하려면 최소한 3일 전에는 세부 타임테이블을 보내줘야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한 회신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기존에 다른 회의 일정이 잡혀 있었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참석을) 못했다”며 “다음에는 참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WHO 홈페이지엔 5월 중순부터 이달 회의가 진행된다는 공지가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또한 이번 회의는 코로나19 창궐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대신 화상회의로 진행돼 정부의 참석 의지가 부족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박능후 장관은 지난해 엘리자베스 이로(Elizabeth Iro) WHO CNO(간호정책수석관),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과 회의를 갖고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은 바 있다. fnDB
박능후 장관은 지난해 엘리자베스 이로(Elizabeth Iro) WHO CNO(간호정책수석관),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과 회의를 갖고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은 바 있다. fnDB

■WHO 담당자 앞에서 뜻 모았었지만

한국이 지난 16년 간 이 회의에 단 한 차례도 참석하지 않은 데는 간호와 조산 분야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이 한 몫을 했다. 해당 회의는 GCNMO(The Government Chief Nursing And Midwifery Officer·GCNMO)라 불리는 간호조산 부문 대표 공직자에게 참가자격이 주어지는데, 한국엔 이와 관련한 상설 직제가 없는 것이다.

한국은 대한간호협회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지난해에야 TF팀 형태로 간호정책 전담 부서를 꾸렸지만 이조차 올해 회의를 건너뛴 것이다.

지난 2018년 열린 국제간호조산회의 참석국은 모두 78개 국가로, 미국·영국·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 등 선진국은 물론 제3세계 후진국도 다수 참석해 정보를 공유하고 향후 정책방향을 논의했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일본과 중국은 물론 태국, 인도, 인도네시아, 홍콩, 싱가포르 등이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5월 박능후 장관과 엘리자베스 이로(Elizabeth Iro) WHO CNO(간호정책수석관), 신경림 간협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 참석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지만, 결과적으로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1945년 독립 당시 간호국부터 50년대 간호과로 존재해왔던 간호정책 전담 부서는 1970년대 폐지된 이후 현재까지 보건복지부 내에 상설부서로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전담부서 상설화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해 간호정책TF를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fnDB
1945년 독립 당시 간호국부터 50년대 간호과로 존재해왔던 간호정책 전담 부서는 1970년대 폐지된 이후 현재까지 보건복지부 내에 상설부서로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전담부서 상설화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해 간호정책TF를 신설해 운영하고 있다. fnDB

■간호정책 전담부서 상설화도 '관심'

한편 이 회의에서 함께 논의된 간호정책 전담부서 및 간호정책수석 직제가 실제 수립될지도 관심을 모은다. 보건복지부는 당시 2년간의 TF팀 운영을 거쳐 향후 정규직제로 발전할 계획이란 입장을 나타냈지만, 회의 역시 불참한 상황에서 정규직제 전환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와 대해 신 회장은 이달 초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보건복지부에 간호정책 주무부서가 존재하지 않아 거시적인 간호정책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 바 있다. 신 회장은 “일본에는 간호사 출신이 후생노동성 과장으로 있는데 CNO 자격으로 회의에 나간다”며 “조사를 하며 보니 일본만이 아니라 중국, 태국, 대만, 말레이시아가 다 (CNO가) 있는데 우리만 없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WHO는 현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Tedros Adhanom Ghebreyesus) 사무총장이 임기를 시작한 뒤 기구 내 CNO 직제를 사무총장 직속으로 상향조정해 장기적 간호정책이 보건의료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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