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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못내 재임대"… 폐업도 힘든 자영업자 [현장르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09 17:31

수정 2020.09.09 19:48

벼랑 끝에 몰린 이태원 상권
임대 계약기간 남아 장사 못접어
월세 내줄 전대 세입자 찾아나서
집기도 버려둔채 도망간 업주도
건물주, 공실돼도 임대료 안내려
이태원 10곳 중 3곳은 ‘빈 상가’
코로나19 등 악재가 겹치면서 이태원 상가의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다. 9일 서울 이태원 음식점 밀집지역의 한 상가에 임대문구가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코로나19 등 악재가 겹치면서 이태원 상가의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다. 9일 서울 이태원 음식점 밀집지역의 한 상가에 임대문구가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장사가 망해도 월세는 내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전대(재임대)라도 해서 대신 월세 내줄 사람을 찾아야 할 판입니다. 요새는 장사를 포기하고 집기마저 남겨두고 사라진 가게들도 간간이 있어요."

9일 서울 이태원역 부근에서 만난 자영업자 김모씨의 입에서는 절박감마저 묻어났다. 한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상권으로 떠올랐던 이태원이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인상 등으로 기존 점포가 상권을 이탈하는 현상)에 이어 코로나19라는 '더블딥' 악재가 겹치면서 서울에서 가장 공실률이 높은 기피 상권으로 떠올랐다.

실제로, 이날 찾은 이태원역 일대는 건물 곳곳에 '임대문의' 문구가 나붙었다. 일부 매장은 폐업을 한 듯 집기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이 일대는 지난봄 이태원 클럽발 감염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한산함을 넘어 을씨년스러울 정도였다.

특히 일부 상가에는 '전대 문의'라고 붙인 곳도 등장했다. 계약기간이 남은 기존 세입자가 장사를 접고 싶어 매물로 내놔도 팔리지 않자 건물주 대신 임대료를 깎고 재임대에 나선 것이다.

이곳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코로나로 지난해에 비해 매출이 3분의 1 토막 난 것 같다"며 "매출이 워낙 안 나오니 최근 이태원 일대는 대신 월세를 내줄 세입자를 구하는 전대까지 생겨났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태원의 한 점포는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220만원에 계약 중인데 세입자 상인이 이보다 월세 50만원가량을 낮춰 다른 세입자를 구하고 있었다. 점포 상인은 "당장 장사를 접고 싶어도 남아 있는 계약기간이 있어 50만원을 내가 대신 부담하는 조건으로 새 세입자를 찾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높은 임대료에 이태원은 새로운 임차인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상가 권리금이 떨어진 건 오래전이다.

공실률도 29.6%(한국감정원 기준)로 2·4분기 서울지역에서 가장 높다. 서울의 전체 공실률(7.9%)보다 4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인 지난해 4·4분기 공실률이 19.9%였는데 6개월 만에 10%포인트 이상 상승한 것이다.

반면 임대료는 요지부동이다. 이태원 A공인 관계자는 "건물주들은 '너희가 장사 잘됐을 때 월세를 올려줬느냐'면서 장사가 안된다고 임대료를 깎아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그는 "결국 인건비와 재료비를 내고 나면 월세를 낼 돈이 없어 보증금만 까먹는 곳이 수두룩하다"고 답답해했다.


장사를 포기한 임차 상인이 돌연 사라져버린 경우도 있다. 상인 박모씨는 "이태원에서도 접근성이 안 좋은 곳들은 피해가 더 심해 아예 집기도 버리고 도망간 사장들도 많다"며 "건물주들도 그런 사람은 찾지도 않다가 보증금을 다 까면 마지막에 통보한다"고 말했다.


상가정보연구소 조현택 연구원은 "이태원 상권의 경우 많은 건물주들이 비쌀 때 매입해서 시세차익을 원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월세를 내리면 그만큼 부동산의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공실로 놓고 임대료를 내리지 않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aber@fnnews.com 박지영 기자 , 김지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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