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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똑같이 생겨서" 6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혔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0.17 11:30

수정 2020.10.17 11:30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25]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포스터 ⓒ국가인권위원회
포스터 ⓒ국가인권위원회

[파이낸셜뉴스]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여섯명의 영화감독에게 의뢰해 첫 인권영화를 제작했다. <여섯 개의 시선>으로, 핵심적인 기본권인 평등권을 침해하는 행위 '차별'을 다뤘다. 당대 한국 영화계의 중추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임순례·정재은·여균동·박진표·박광수·박찬욱이 각기 차별을 주제로 찍은 단편을 모아 묶었다.

그중 박찬욱 감독은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란 영화를 찍었다. 네팔에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건너온 여성 '찬드라'가 수년 간 겪은, 믿기 힘든 실화를 다뤘다.


찬드라는 네팔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온 이주노동자다. 공장에 갇혀 살다시피 해서 한국말은커녕 동네 지리도 모르는 그녀가 어느 날 공장 밖으로 나선다. 동료와 다툰 후 홧김에 뗀 걸음인데 그만 길을 잃은 것이다. 찬드라는 한참을 헤매다 경찰에 인계된다. 경찰서에선 한국인과 용모가 비슷한데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중얼거리는 그녀를 정신병자로 판단한다.

정신병원에 인계된 찬드라는 거듭 자신이 네팔사람이라고 주장하지만 귀담아 듣는 이가 없다. 말을 알아들어도 정신이상자로 판단할 뿐이다. 한국에 네팔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흔한 것도 아니니 대질시켜 주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찬드라는 정신병원에 입원한지 수 년이 지나서야 네팔인과 만났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박찬욱 감독은 정신병력도 전혀 없었던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까지의 과정에 주목했다. 단지 한국어를 못했거나 특별히 미친 사람처럼 보여서 그녀가 격리된 게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찬드라를 정신병원에 가둔 건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나와 다를 리가 없다는 환상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한 장면. ⓒ국가인권위원회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한 장면. ⓒ국가인권위원회

외국인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나요?

동료의 신고와 병원에서 대면한 파키스탄 사람이 겨우 알아낸 여권번호가 있었지만 찬드라는 정신병원에서 나올 수 없었다. 경찰의 불성실한 태도 때문이었다.

병원의 태도는 당혹스러움을 넘어 놀랍기까지 하다. 병원에서 자신이 네팔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찬드라에게 의사는 한국말로 자신의 눈을 쳐다보며 다시 말하라고 요구한다. 찬드라가 눈을 피하며 네팔어로 다시 말하자 의사는 그녀가 우울증과 신경쇠약이라는 진단을 내려버린다.

세상에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 눈을 마주치며 말하는 게 당연한 곳이 있는 것처럼 눈을 피하고 말하는 게 미덕인 나라도 존재한다. 한국만 해도 불과 100여 년 전에는 남자와 여자, 양반과 상인이 눈을 마주보며 말하는 건 있기 어려운 일이었다. 반면 서구에선 눈을 마주치지 않는 건 자신감이 결여돼 있거나 대화할 자세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서구에서 발전한 정신병리학적 진단법은 '눈을 마주보며 말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기준으로 환자에게 정신 이상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늠했다. 찬드라에게 적용된 것도 바로 이 방식이었다. 그저 눈을 피했다는 이유로 정신병 진단을 받은 찬드라는 결국 병원에서 나갈 기회를 잃어버렸다.

이렇게 들어간 병원에서 가해진 치료가 정상적이고 발전적이길 기대할 수는 없다. 찬드라를 기다리고 있던 건 과도한 약물과 강압적인 교육이었다. 교육이라기보다 세뇌에 가까웠던 과정은 미치지 않은 찬드라를 미쳐버리게 할 만큼 억압적이었다. 결국 찬드라는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입고 만다.

흔히 한국에서 외국인이라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하얗거나 까만 사람을 생각한다. 사려 깊은 사람이라 해도 그 뒤에야 황색 피부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문화적으로 혹은 각종 매체를 통해 외국인의 이미지가 백인과 흑인에 한정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다.

한 외국인 여성 노동자가 이 나라 사람과 외견상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당해야했던 안타까운 사연은 우리 안에 깃든 편견을 일깨운다.
인권위 첫 인권영화가 가진 가치도 여기에 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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