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던 그가 다시 눈을 들어 바라본 곳은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함께 사실상 차기 대선의 전초전이나 다름없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총선 패배 이후 침체된 당의 분위기를 쇄신할 기회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문으로 물러난 만큼 차기 여성 시장 후보에 대한 관심도 높은 터다.
지난 21일 부산 중구 중앙동 인근에서 파이낸셜뉴스와 만난 이 전 의원은 “첫 여성 광역단체장의 등장은 우리나라 정치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당이 야당 답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현 상황에서 선거에 이기더라도 대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시장을 내세워서는 미래가 없다는 지적도 쏟아냈다.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부산에서 다녔다. 본적도 영도구 대평동이다. 사실 부모님이 부산대 커플이셨다(웃음). 르노삼성자동차에서 법무팀장으로 일했고 센텀시티 외자유치 때도 외투법인들 자문을 담당했다. 국회에서도 지역구는 아니었지만 부산 관련 일이 있으면 늘 차출되곤 했다. 산자위 소위원장을 비롯해 행안위쪽에서는 부산 산업전환 관련 연구단체 활동도 했다. 지금도 국민의힘 부산시당 남구을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다.
-전국구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도 이번에 서울이 아니라 부산시장에 도전하는 이유는?
▲사실 서울시장 얘기도 많이 나왔다. 이번이야말로 여성 단체장이 나와야 한다는 당위성이 큰 만큼 민주당에서도 쎈 여성 후보를 낼 것 같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맞설 수 있는 여성 후보로 제가 많이 언급됐다. 정치 입지만 보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향인 부산에 내려와서 보니 지금 부산은 대한민국의 모순을 가장 많이 안고 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은 지금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이다.
-사실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경제지표만 보더라도 고용율, 경제활동참가율, 공장가동률 등이 전국 웬만한 도시보다 낮다. 전국에서 가장 고령화가 빠르고 청년실업도 심각하다. 특히 원도심은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사실상 죽어가는 도시가 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15년 정도 투자전문변호사 등 경제분야 활동을 해본 관점에서 부산은 동북아의 허브, 태평양의 관문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가진 잠재력이 큰 도시다. 이런 도시가 죽어가는 것은 대한민국 전체로서도 심각한 문제다. 부산이 죽어가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혁신 시점을 실기했다는 것이다. 미국,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부산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우리나라가 이 정도로 성장했으면 거대경제권이 최소 2~3곳은 돼야 한다.
정치 측면에서도 부산은 큰 변동의 시발점이다. 야권의 파수꾼이기도 하다. 부산이 무너지면 야권의 사상적 보루도 무너질 수 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부산의 리더는 부산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을까. 부산이 발전하지 못했던 이유도 스스로 지방도시로 정체성을 규정하고 거기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결국 부산의 수장은 세계적인 리더가 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부산의 경쟁 도시는 서울이 아니라 싱가폴, 홍콩, 샌프란시스코, 시드니 같은 곳이 돼야 하지 않겠나.
-지난 총선에서 간발의 차이로 졌지만 부산의 현안을 파악하는 기회가 된 것 같다.
▲당시 공약으로 가덕신공항, 해양관광클러스터 등 산업전환 측면에서 기존 하드웨어, 제조업 위주의 먹거리를 관광, 문화 등 소프트웨어, 콘텐츠 위주로 바꿔야 한다는 정책을 내놨다. 덕분에 부산시장 공약이냐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웃음). 총선 이후 부산에 머물면서 부산의 현안들, 예를 들어 산복도로 리디자인 같은 것들을 많이 구상했다. 과거 잘 나갔던 부산이 지금 세계경제 흐름 속에서 어떻게 추락해가고 있는지 현장을 직접 둘러보면서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명감을 갖게 됐다. 부산은 제2의 산업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와 같이 밀어붙이기는 힘들겠지만 그 때와 같은 열성과 사명감은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후보들 간 당내 경쟁이 치열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데.
▲기득권이 변화와 혁신을 얘기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번에야말로 부산에 가장 기득권이 없는 사람이 시장이 돼야 한다. 부산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단지 부산에 오래 있었다는 이유로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은 더 이상 안 된다. 지금까지 숱한 기회를 줬는데 해내지 못한 사람들이 또 다시 기회를 달라고 하는 꼴이다. 어떤 누가 됐든 정치적 이해관계는 없을 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선거는 이겨야 한다.
▲서울시장은 당선이 가장 중요하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존재감 크고 득표력이 높은 사람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부산시장은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국민의힘 변화를 상징할 수 있는 혁신적 인물, 세대교체를 상징할 수 있는 인물을 내야 한다. 시대의 흐름과 선거 구도도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만큼 해볼만하다고 본다.
이번 보궐선거는 대선을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는 가장 큰 분기점이다. 과거의 친이·친박 프레임, 적폐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기더라도 밋밋하게 이겨선 안 된다. 할 수 있다는 결기를 보여줘야 대선 때까지 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 시장이 되더라도 대선에는 영향을 못 주는 후보는 도움이 안 된다. 물론 단체장은 행정가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하지만 이재명, 박원순, 김경수 등의 경우를 보면 행정가 역할을 하면서도 당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당이 위기에 처할 때 엄호할 수 있는 역할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단체장이 든든한 뒷배가 돼야 한다.
-최초의 여성 광역단체장이 갖는 의미도 크다.
▲이전에도 여성의 출마는 있었지만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었던 게 사실이다. 저는 당선 가능성이 있는 유력 후보 중 하나다. 당선되면 부산뿐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사에 큰 획을 긋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좌우를 떠나 여성의 정치참여를 높이고 가부장적 질서를 깨기 위해 힘써온 결과 제도적으로는 남녀가 비교적 평등에 가깝게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위로 올라갈수록 유리천장이 두텁다. 제가 30대 중반 당시 30대 대기업에서 최연소 여성 임원이 되면서 주목을 받았고 여성 경제인 출신 인재영입 케이스로 정치에 입문했다. 39살때는 지역구에 당선됐다. 여성 최초 광역단체장의 등장은 미래 리더를 꿈꾸는 이들과 현재 리더 역할을 하고 있지만 힘들어하는 많은 여성들에게 큰 용기를 주는 일이 될 거라 생각한다.
-출산율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저도 임원으로 일할 때 임신, 육아를 겪으면서 너무 힘들어 집을 회사 옆으로 옮긴 적 있다. 그래도 전문가로서 믿는 구석이 있었지 경직된 지금의 노동구조에서는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여성이 너무 많다. 사실 여성이 멀티플레이어로서 대외활동과 살림살이를 동시에 잘 하는 데 더 능숙한데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소외된 미혼모 문제에 관심이 많다. 소득이 낮을수록 여성이 억압받는 경우가 많은데 저소득층 여성 인권 문제나 여성 노인들에 대한 복지문제 등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만약 시장이 된다면 아이를 가진 여성이, 위대한 엄마들이 일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싶다. 시장이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자아실현을 최대한 배려해주고 함께 고민을 해결해주는 부산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공항 논란에 대한 입장은?
▲가덕신공항 해야 한다, 김해보다 가덕이 더 좋다, 이거 다 알고 있는 얘기다. 그런데 ‘어떻게’가 빠져 있다. 국토부는 안 된다고 하는데 우리 입장만 살펴 무조건 해달라고 주장만 할 게 아니라 될 수밖에 없는 명분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이 시대에는 대통령이 혼자 모든 것을 전횡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민주당 식의 정치적 밀어붙이기도 답이 없다. 조건을 충족시키는 게 실력이다. 책임질 수 있는 결정을 추구해야 한다.
김해공항을 놔두고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전체를 가덕으로 이전해야 한다. 인천공항을 모델로 해선 안 된다. 하나의 통합된 신공항으로 가야 한다. 김해공항 부지 내 군 공항도 이전을 추진하면서 그 부지를 개발해 수익을 충당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여객뿐 아니라 화물공항으로서의 기능도 살려야 한다. 인천공항 물류도 곧 포화상태에 다다를 것이다. 화물공항이 남부권에 꼭 있어야 한다. 물류 경쟁력에 있어 우리의 경쟁자는 인천공항이 아니라 일본, 홍콩 국제공항이 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부산시민들에 한 말씀.
▲우리나라 지도를 거꾸로 보셨으면 좋겠다. 우리는 늘 광활한 대륙을 쳐다보면서 꿈을 키워왔다. 하지만 바다야말로 우리의 희망이다. 태평양과 전 세계로 열려 있는 바다가 곧 영토가 되는 날이 오고 있다. 전 세계 젊은이들을 부산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옛 영광을 잊고 깨어나서 무한한 상상력과 꿈을 꾸는 도시 부산을 다함께 꿈꿨으면 좋겠다. 우리는 윗 세대와 사고방식이 다르지 않나.
defrost@fnnews.com 노동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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