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대기업

세계에 새긴 '초일류 신화' 거인 이건희 떠나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0.25 18:05

수정 2020.10.25 19:29

이건희 삼성 회장 1942~2020
향년 78세로 별세
1987년 그룹 2대회장 올라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등
위기때마다 정공법으로 승부
TV 만들던 시총 1兆 회사를
318兆 반도체·휴대폰 리더로
심근경색 투병 6년5개월만
장례는 삼성서울병원서 가족장
세계에 새긴 '초일류 신화' 거인 이건희 떠나다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야 한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선언

"글로벌 일류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2010년 3월 경영복귀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재계의 큰 별, 이건희 회장이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지난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진 지 6년5개월 만이다.


삼성전자는 25일 이같이 이 회장 사망 소식을 알렸다. 삼성 측은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2014년 5월 10일 밤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옮겨져 심폐소생술(CPR)까지 받은 후 소생해 지금까지 치료를 이어왔다. 재활치료 과정에서 자가호흡을 하기도 했으나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이날 영면에 들었다.

"초일류기업으로" 약속지켜


고인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부친인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박두을 여사 사이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947년 서울로 올라와 혜화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6·25전쟁으로 마산·대구·부산으로 옮겨 다녔다. 5학년 때는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와세다대 상학부를 거쳐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1968년 중앙일보와 동양방송 이사 취임을 시작으로 1978년부터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그룹 후계자로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이후 부친이 타계한 뒤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그룹을 이끌었다.

재계는 이 회장에 대해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키웠다고 평가했다. 고인이 회장에 올랐을 당시만 해도 삼성은 지금과 같은 초일류기업은 아니었다. 이 회장은 취임 당시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전 직원에게 선언하면서 오늘날의 삼성을 일구는 데 초석을 다졌다.

이후 이 회장은 불같은 집념으로 삼성의 내·외형적 성장을 이끌었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1조원 수준이었다. 이 회장이 쓰러진 해인 2014년에는 318조7634억원을 기록, 348배로 늘었다.

고비 때마다 정면돌파로 극복


이 회장은 주요 고비 때마다 남다른 선구안으로 삼성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왔다.

반도체사업에 진출해 삼성을 오늘날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운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1974년 이 회장이 파산 직전인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삼성 내부에선 반발이 심했다. "미국, 일본보다 20~30년 뒤처졌는데, 따라가기나 하겠는가"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일본의 한 기업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이 회장은 "언제까지 그들의 기술속국이어야 하느냐"며 사재를 털어 반도체에 진출했다. 결국 삼성은 1986년 7월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반도체산업이 본격적으로 꽃피우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선 국내 제일이라는 안일함에 빠져 있던 삼성을 다시 한번 도약시킨 것도 그 유명한 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신경영'이다. 1993년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의 매장에서 구석에 먼지 쌓인 채 푸대접받고 있던 삼성 제품을 보고 충격받은 이 회장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유명한 명언을 남기며 전사적인 쇄신을 시도했다.

신경영 선언 이후 이 회장은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을 꼽았다. 모두가 손에 전화기를 들고 다니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게 그의 예상이었다. 1995년에는 불량률이 높은 무선전화기 15만대, 150여억원어치를 수거해 전량 불태우는 등 품질경영에 매달렸다. 결국 삼성은 애니콜 신화를 이룩하면서 전 세계 휴대폰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꺾는 성과를 냈다.


한편 이 회장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례가 끝난 후 고인은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내 선영에 안장될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