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단독] 팬오션 직원, 교대요구 해기사에 "징징짜는 놈" [김기자의 토요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4.10 09:16

수정 2021.04.10 09:15

하림그룹 산하 팬오션 업무메일 유출
교대요구 해기사 '징징짜는 놈' 비하
사기 추락 일선 해기사, "사과하라"
안중호 대표 '유감, 재발방지 약속'
[파이낸셜뉴스] 하림그룹이 운영하는 선사 팬오션 직원들이 주고받은 메일에서 하선을 요청한 일선 해기사를 ‘징징짜는 놈’으로 비하한 내용이 그대로 선박에 노출되는 일이 발생했다.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려는 선박직원을 관리자가 부적절하게 비하한 것으로, 비판 소지가 적지 않다.

팬오션 노조는 사측의 즉각적인 사과와 책임자 공개 및 문책을 요구했다. 팬오션 측은 진상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우선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를 노조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메일 내용을 그대로 노출하며 팬오션을 질타하는 게시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으나 삭제됐다.
해당 글을 본 해기사들은 사측으로 추정되는 인원이 법적대응 시사 등 게시자를 겁박하는 댓글을 달았다고 주장했다.

하림그룹이 운영하는 선사 팬오션의 육상직원이 해상직원을 부적절하게 표현한 메일이 선박에 그대로 노출되며 일선 해기사들의 분노가 들끓었다. 팬오션.
하림그룹이 운영하는 선사 팬오션의 육상직원이 해상직원을 부적절하게 표현한 메일이 선박에 그대로 노출되며 일선 해기사들의 분노가 들끓었다. 팬오션.

교대요구 해기사 '징징짜는 놈'이라 불러

10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지난 5일 하림그룹 계열 선사 팬오션 영업팀 직원들이 주고받은 메일이 일선 선박에 그대로 보내지는 일이 발생했다. 탱커선 영업팀원끼리 주고받은 메일로, 코로나19 환경 속에서 선원 교대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해당 메일 안에 부적절한 내용이 포함됐다는 점에 있다.

메일을 쓴 직원은 “(선원 교대를) 미뤄왔던만큼 하긴 해야 하는데, 저 많은 선박의 선원교대를 한 번에 다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며 “선원교대 요구해놓고 선원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징징짜는 놈 하나 바꿔주고 또 다음 항차에 또 교대를 요구받지 않도록 선단과 협의를 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중 해당 직원이 교대를 요구하는 선원을 ‘징징짜는 놈’으로 적은 사실이 일선 선박에 그대로 노출되며 승선 중인 해기사들이 반발에 나선 것이다. 항해사 출신 언론인들이 있는 본지에 관련 제보가 이어진 가운데 일부 승선 해기사가 메일 내용을 직접 촬영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그대로 올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와 관련해 노조는 “해상직원을 비하하는 단어로 표현하는 육상 직원에 대해, 실망감을 넘어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해당 직원의 신분을 밝히고, 당사자의 진실된 사과문과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명해달라”고 요구했다.

관련된 조치를 묻는 본지 취재에 팬오션 관계자는 “대표이사께서 유감의 메시지와 함께 재발방지 약속을 하셨다”며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는 회사에서 경위를 파악 중에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안중호 팬오션 대표. fnDB
안중호 팬오션 대표. fnDB

커뮤니티 글 삭제, 해기사 '어이없다'

안중호 대표가 직접 유감의 메시지와 재발방지 약속을 했지만 선원들의 분노는 들끓고 있다. 특히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팬오션 해기사가 게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글이 삭제된 것과 관련해 사측의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부당한 압력을 가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상태다.

실제 해당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선 팬오션이 직접 지칭되지 않았으나 해기사들이 모두 짐작할 수 있는 'ㅍㅇㅅ'이란 표기와 함께 메일 내용이 그대로 실려 논란이 됐다. 이에 상당수 해기사들이 선박직원을 함부로 응대하는 육상직원들을 댓글로 성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게시글은 ‘고소당하고 싶으냐, 삭제하라’는 취지의 댓글이 달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글을 직접 봤다는 2항사 이모씨(20대)는 “커뮤니티 이용자가 전·현직 항해사들이다보니까 대부분 회사랑 문제를 일으킨 직원을 욕했는데, 누가 봐도 사측에서 쓴 것 같은 반 협박 댓글이 올라왔다”며 “제대로 해결하고 사과할 생각은 않고 협박하고 쉬쉬하는 게 업계의 현주소인 것 같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교대자를 ‘징징짜는 놈’으로 표현한 육상직원의 태도에도 비판이 이어졌다. 8년 경력 1항사 김모씨(30대)는 “코로나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교대도 못하고 1년 가까이 배를 타고 있는 항해사가 넘쳐나는 게 현실”이라며 “회사의 요구를 해기사가 수용해서 노력하고 있는 상황인데, 때가 돼서 교대해달라는 걸 징징거린다고 표현하다니 믿을 수가 없다”고 황당해했다.

한국해양대 출신 2항사로 하선한 상태인 최모씨(20대) 역시 “육상직원들도 동종업계 사람인데 최소한의 상식과 배려가 없어 충격적”이라며 “문제를 일으킨 직원을 확실히 징계해서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림그룹이 운영하는 선사 팬오션 육상직원의 해상직원 비하와 관련해 이를 규탄하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됐으나 현재는 삭제된 상태다. 온라인 갈무리.
하림그룹이 운영하는 선사 팬오션 육상직원의 해상직원 비하와 관련해 이를 규탄하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됐으나 현재는 삭제된 상태다. 온라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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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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