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한국시리즈를 봤다. 12일 잠실야구장에는 비장감이 감돌았다. 1위 SSG와 2위 LG가 처음 맞붙었으니. 초반 기세가 다른 팀들을 압도해온 두 팀이다. 어느 쪽이든 이기는 팀이 9회 마무리 투수를 마운드에 올릴 것이다.
SSG가 4-1로 앞섰다. 김택형(26·SSG)이 등판했다. 김택형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구위는 좋으나 제구력은 불안. 2사 1,2루서 5번 유강남을 맞이했다. 한 방 있는 타자다. 아차하면 동점이 될 수도 있었다.
초구는 볼. 김택형은 9회 5명의 타자를 맞이했는데 초구는 전부 볼이었다. 그런데 묘하게 2구는 다 스트라이크였다. 유강남에게도 2구는 스트라이크.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유강남을 상대로 내리 세 번 연속 포크볼을 던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김택형에게 보기 힘든 구종이었다. 포크볼은 정교한 제구가 어려운 구종이다. 포수 플라이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시즌 5세이브째를 올리며 LG 고우석(24)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김택형은 2015년 넥센(키움)에서 4승 4패 2홀드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시속 150㎞를 던지는 왼손 투수. 듣기만 해도 짜릿하다. 이후 극심한 부침을 겪었다. 제구력 불안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2016년 7월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2019년 2승 1패 2홀드 평균자책점 5.79로 재기했다. 그래도 투구 횟수(23⅓)보다 사사구(26개·볼넷 24개 포함)가 더 많았다. 김택형이 확 달라진 것은 지난해부터다.
김택형은 공을 몸 뒤에 감춰둔 채 시동을 건다. 타자의 눈을 현혹시키지만 투수 스스로도 제구에 어려움을 겪는다. 지난 시즌 75⅓이닝을 던져 42개의 볼넷을 허용했다. 제구력은 한층 안정됐다.
올해는 6이닝 2볼넷이다. 가장 가까운 2020년(23이닝 20볼넷)과 비교해도 작년과 올해 괄목성장이다. 김택형은 고우석과 함께 세이브 부문 공동 1위에 올라있다. 나란히 평균자책점 0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고우석에게도 고정된 이미지가 있었다. 공은 빠르나 구종이 단조로움. 고우석은 10일 NC전서 5세이브째를 기록했다. 마지막 타자 박건우 타석이 눈길을 끌었다. 박건우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정교한 타자다.
고우석은 박건우를 상대로 6개 공을 던졌다. 그의 장기인 직구 3개. 역시나 빨랐다, 3개의 직구 모두 시속 154㎞. 두 개의 커브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고우석은 원래 직구, 슬라이더 투피치다.
커브의 속도가 133, 131㎞. 웬만한 투수의 슬라이더 빠르기다. 4구째 커터는 147㎞. 이제 고우석에게 단조로운 구종은 옛말처럼 들린다. 이전 네 타자에겐 직구와 커터 투피치였다.
괄목성장은 눈에 띄게 달라졌을 때 쓰는 표현이다. 원래 이 말 앞에는 ‘선비를 사흘 만에 만나보면’이라는 전제가 붙어있다. 이 경우엔 ‘투수가 겨울을 잘 보내면’으로 바꿀 수 있다.
LG와 SSG는 확실히 달라졌다.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그 중심에는 두 마무리 투수가 있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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