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이정후는 통산 3000타석을 채웠다. KBO(한국야구위원회)가 집계하는 생애 통산 타율 순위의 기준이 3000타석이다. 이정후의 통산타율은 0.339487. 1안타를 빼더라도 0.33911이다. 그러니 타석이 더 중요했다.
이정후는 이 부문 역대 1위 장효조(0.331)를 뛰어넘었다. 3위 박민우(NC)의 통산타율이 0.326이어서 당분간 이정후는 1위를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60타수 무안타에 그쳐도 장효조보다 높은 0.332다.
야구기자의 눈에는 장효조의 이 두 기록은 쉽게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장효조의 타격 재능이 워낙 뛰어났고, 통산 0.331이나 한 시즌 0.387은 정복하기에 너무 높은 산처럼 느껴졌다.
그 기록들은 아버지와 아들에 의해 깨졌다. 신기하게도 새 기록 작성 당시 두 부자의 나이는 24살이었다. 이종범은 건국대를 거쳐 프로 2년차이던 1994년 24살 때 0.393의 믿기지 않는 타율을 남겼다.
장효조가 0.387을 기록한 해는 1987년이었다. 그의 나이 31살 때였다. 27살에 프로 무대에 뛰어들어 5년차에 세운 기록이다. 24살의 장효조는 실업야구 포항제철에서 뛰었다.
그와 교환된 선수가 ‘야구 그 까짓 게 뭔데’라는 게임 광고 카피로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최동원이다. 첫 트레이드 파동 때 장효조와 오래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맥주까지 곁들이며 그의 야구인생 전반에 대해 들었다.
인상적인 대목이 몇 있었다. ‘타격 달인’의 가장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궁금했다. 그의 답변은 의외였다. 당연히 0.387의 타율을 기록한 그해(1987년)라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그가 말한 전성기는 한양대 2학년 때라고 했다. 당시의 대학야구는 지금과 달랐다. 대부분 선수들이 고교 졸업 후 실업야구보다 대학을 선택하던 시절이었다. 박철순(연세대), 황규봉(고려대), 임호균(동아대), 선우대영(중앙대) 등 좋은 투수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타석에서 늘 안타를 때려낼 자신이 있었다고 했다. 투수가 던진 공에 찍힌 공인구 마크(엄지손톱보다 조금 작다고 보면 된다)를 본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했다. 그게 말이 되나.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이정후는 데뷔 후 5년 연속 3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지난해 타율은 0.360. 19일 현재 올시즌 타율은 0.295. 시즌을 끝낼 때쯤엔 3할을 넘어서 있을 것이다. 이정후를 만나면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야구공에 적힌 글씨를 본 적 있냐고.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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