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모교 코치로 부임해 26년째 장승처럼 한곳에 머물렀다. 경남고 감독 자리는 쉽지 않다. '야구 명가'라는 이름이 때로는 커다란 짐이다. 우승에 대한 중압감이 항상 어깨를 짓누른다.
2013년 말 감독을 맡았다. 지난해까지 한 번도 메이저대회 우승이 없었다. 이제야 비로소 그 짐을 내려놓았다. 48년 만에 모교에 황금사자기 우승기를 바쳤다. 벅찬 마음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전화를 받았을 때 전 감독과 선수단을 태운 버스는 문경새재 구름 위를 달리고 있었다.
―7회 6번 장수원 타석 때 스리번트(투 스트라이크에서 번트 실패가 나오면 아웃)를 감행했다. 인상적인 장면이었는데.
▲장수원이 잘 치는 타자이지만 상대 투수와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았다. 0-2로 뒤진 상황서 무사 1, 2루였다. 동점을 만들면 좋겠지만 한 점이라도 따라가면 후반에 역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청담고 선발 류현곤이 한 경기 최다 투구수(105구) 제한에 걸릴 것 같아 투수 교체만 되면 우리 쪽에 유리하다는 판단으로 스리번트를 지시했다. 장수원이 어려운 번트를 잘 대주었다.
―무려 48년 만에 황금사자기를 품에 안았는데.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지난해 준결승까지 올라갔는데 대구고에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1974년이 이 대회 마지막 우승이었고, 1987년엔 결승에서 신일고에 져 준우승에 머물렀다. 경남고는 1947년부터 내리 3연패를 차지하는 등 이 대회와 인연이 깊었다. 그동안 선배들의 혁혁한 과거에 누를 끼쳐 왔는데 48년 만에 우승해 기쁘다.
―2학년 투수 나윤호가 MVP에 선정됐다. 하지만 감독의 MVP는 늘 따로 있지 않나. 감독으로서 가장 고마운 선수는 누구인가.
▲선수들 모두 잘 해주었다. 덕수고(4-3), 북일고(6-3) 등 강호들과의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 모두가 MVP이지만 아무래도 포수 김범석이 가장 고생을 했다. 이번 대회서 평소보다 타격이 잘 터져주지 않았지만 투수 리드와 블로킹, 2루 송구 등 포수로서 흠잡을 데 없는 경기력을 보여줬다. 많은 포수들을 지도해 보았지만 공격과 수비 통틀어서 보기 드문 특급 포수다. 내 마음 속 MVP다.
―예상과 달리 초반 청담고에 0-2로 밀리면서 애를 먹었다. 전국 무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팀인데 막상 상대해보니 어떻던가.
▲결승까지 그저 올라온 팀이 아니다. 특히 선발 류현곤은 왜 저런 투수가 주목받지 못했나 싶을 만큼 좋은 투구를 했다. 류현곤이 완투할 수 있었다면 우리가 졌을 것이다. 상대지만 칭찬해 주고 싶다.
창단 6년차인 경기 평택 청담고는 이번 대회서 처음으로 전국 대회 8강, 4강, 결승 무대를 밟았다. 16강부터 내리 3경기 한 점차 승리를 거두며 결승에 진출했다. 경남고 전광열 감독은 부산으로 내려가 주말리그와 7월에 열릴 청룡기 대회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12시 쯤 부산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