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6일 KT와 한화의 수원경기. KT가 0-2로 뒤진 4회 말 박경수(38·KT)가 타석에 들어섰다. 2사 1루여서 한화 벤치는 느긋했다. 박경수에게 홈런을 맞을 일은 없다고 보아서다.
한화 수베로 감독은 분석 자료를 검토했다. 박경수의 올 시즌 홈런 수는 0으로 적혀 있었다. 마운드에는 외국인 투수 페냐. 여러 모로 한화 측에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수베로 감독이 미처 몰랐던 숨겨진 기록이 있었다.
박경수는 7월 7일 KIA와의 광주 경기서 한 차례 홈런을 때려냈다. 아쉽게도 이 경기는 우천으로 인해 5회를 넘기지 못하고 취소됐다. 덩달아 박경수의 홈런도 빗물에 쓸려내려 갔다.
박경수는 볼카운트 2-1에서 페냐의 직구를 두들겨 좌측 담장을 넘겼다. 올 시즌 1호 홈런. 페냐는 베테랑 박경수를 상대로 3구 연속 직구를 던졌다. 연식이 있는 타자들은 빠른 공에 약하다는 속설을 지나치게 믿었다.
36살의 박병호(KT)는 홈런 선두를 달리고 있다. 9일 현재 32개로 2위 김현수(34·LG)와는 12개 차다. 뿐만 아니라 홈런 20위 권 이내 22명(공동 19위 4명 포함) 가운데 20대 타자는 이정후(5위·16개·24·키움) 등 4명뿐이다. 그밖에는 모두 30대다.
그러나 30대 후반 타자라고 모두 박병호처럼 회춘 방망이를 휘두르는 건 아니다. 지난 7월 22일 LG와 NC의 창원 경기. NC가 5-4로 역전한 8회 말 공격이었다. 1사 1,3루여서 한 점만 더 추가하면 NC는 안정된 9회 초를 맞이할 수 있었다. 전 타석에서 홈런을 때린 좌타자 오영수가 들어섰다.
LG 벤치는 사이드암 정우영을 내리고 좌완 진해수를 올렸다. 그러자 NC는 우타자 박석민(37·NC)을 대타로 기용해 맞불을 놓았다. 박석민은 통산 268개의 홈런을 때린 강타자. 타점도 천 개(1033개)를 넘겼다.
진해수의 폭투로 주자는 2,3루. 단타 하나면 2점을 얻을 수 있었다. 최소한 외야 플라이 한방을, NC 팬들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박석민은 볼카운트 2-2에서 힘껏 배트를 휘둘렀다. 타구는 외야로 날아갔다. 그러나 성큼성큼 앞으로 뛰어나온 LG 우익수 문성주에게 잡혔다. 얕은 외야 플라이여서 3루 주자의 발은 그대로 묶였다.
박석민의 기록에 눈길이 갔다. 설마, 박석민은 올 시즌 단 한 개의 홈런을 때려내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해까지 14년 연속 두 자리 수 홈런을 기록한 타자였는데. 삼성에서 NC로 옮긴 2016년엔 32개로 정점을 찍은 KBO리그 대표적 장거리 타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두산 김재호(37)는 홈런 타자가 아니다. 그래도 2018년엔 두 자리 수 홈런(16개)을 기록했다. 2020년 한국시리즈선 홈런 한 방과 타율 0.421을 남겼다. 그런데 올 시즌 72경기에 출전 199번의 타석에 들어서기까지 단 한 개의 홈런도 때려내지 못하고 있다.
김재호는 호타준족이다. 통산 75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하지만 9일 현재 올 해 도루 수 0이다. 그와 동갑내기 이용규(키움)는 홈런 0개이지만 도루 6개로 여전히 빠른 발을 과시하고 있다.
야구 타자들 사이에는 ‘맞았다 싶은 데 넘어가지 않으면 은퇴해야 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만큼 힘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박석민, 김재호는 그 언저리쯤에 있다. 그러나 박병호처럼 돌연 살아날지 모른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