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전문가들은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보장을 앞세워 법 개정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사저도 집회금지 장소로"…野, 집시법 개정안 잇단 발의
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경남 양산시 사저 앞에는 보수 단체 등이 욕설 및 비방 발언을 내뱉는 시위가 지속되고 있다. 일부 시위자의 경우 커터칼을 들고 협박하기까지 하자 문 전 대통령 내외는 지난 5월 31일 보수단체 소속 회원 등 장기 시위자 4명을 명예훼손과 살인 및 방화 협박 등의 혐의로 경남 양산경찰서에 고소했다.
경찰 등이 지난 21일부터 사저 앞 경호를 300m까지 강화하기도 했지만 원칙적으로는 해당 범위이내에서도 시위가 여전히 가능하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11조에 따르면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대통령 관저(官邸),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국무총리 공관 △국내 주재 외국의 외교기관이나 외교사절의 숙소만 인근 100m 이내에서 시위가 제한된다. 그나마도 일부 장소에선 시위가 대규모로 확산될 우려가 없거나 해당 장소에서 일어나는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경우 100m 이내 집회가 허용된다. 국민 표현의 자유와 집회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법적 취지에서다.
이처럼 문 전 대통령 사저 앞 시위가 도를 넘어 지속되면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가 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집시법 개정안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5월 정청래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10명은 전 대통령 사저까지 집회금지 장소로 포함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6월에는 같은 당 한병도 의원 등은 집회 또는 시위 참여자가 비방 목적으로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을 주는 행위, 반복된 악의적 표현을 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을 신설한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전직 대통령 사저 앞 시위는 역대 대통령을 대상으로 지속돼왔지만 집시법 개정안이 발의된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17년 10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일부 시민·사회 단체가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가 위치한 서울 강남구 일대에서 이 전 대통령의 대선 여론 조작 의혹에 대해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집회를 이어갔다. 2017년 3월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당시 박 전 대통령의 강남구 사저 앞에는 지지자들이 수십 명 몰렸고, 같은 해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면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김해 봉하마을 사저 앞에는 친박단체 소속 500여명이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사저가 삼릉초등학교와 가깝게 붙어 있던 박 전 대통령 경우만 학교 주변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8조에 따라 집회를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이 마저도 반영되지 않았다.
집회·시위의 자유와 대립…전문가 "법 개정까지는 불필요"
전문가들은 집시법까지 개정해야 할 필요성과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헌법 제21조에 따라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보장받기 때문이다.
김성천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자와 통화에서 "헌법으로 보장한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선 공공의 이익이 침해돼야 한다"며 "전직 대통령의 평온한 사생활은 공공의 이익이라기보다 사적 이익이라고 봤기 때문에 지금까지 집시법을 통해 제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직 대통령은 개인이라고 봄으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욕설 또는 비방은 모욕죄·명예훼손죄가 성립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반면 우리나라 판례에 따르면 국가·공공기관은 명예 주체 대상이 아니므로 집회에서 욕설과 비방이 나오면 감수하도록 한다"며 "전직 대통령의 사저가 집시법상 집회를 금지하는 공공기관에 준한다고 판단한다면 대신 모욕죄·명예훼손죄를 적용받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실제 A 의원이 발의한 집시법 개정안에는 "형법상 모욕죄, 명예훼손죄가 있는데 따로 집시법을 개정하는 건 과잉입법"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창렬 용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이전 대통령 사저 앞 시위는 효용성도 없을 뿐더러 여야간 갈등만 야기할 뿐"이라면서도 "집시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법률만 강조할 게 아니고 시위자의 양심에 맡겨야 한다"고 봤다.
최 교수는 이어 "현재 시위는 지나치게 편향적이고 맹목적인 비난이므로 여권에서도 이를 자제시킬 필요가 있다"며 "사저 앞 300m까지 경호를 강화한 것처럼 현행 법 안에서 여야 합의를 통해 보호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집시법 개정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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