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육아는 부모 기본의무… 아빠의 ‘동등한 참여’ 당연한 일" [2023 신년기획]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1.02 18:04

수정 2023.01.02 18:05

Recession 시대의 해법
저출산 극복의 길, 스웨덴 ‘지속 가능 육아’서 찾다 (中)
딸 친구 생일파티, 운동수업, 댄스클럽…주말을 온전히 육아에 쏟는 아빠 요아킴
평일 오후 4시면 두 아이 학교 앞으로
일주일에 3~4번 픽업·저녁 준비 도맡아
조부모 의지 없이 부부가 평등하게 나눠
스웨덴 VAB 연 120일까지 돌봄휴가 보장
부부가 함께 아이 키우는 문화 정착 기여
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아킴·리잔느 부부
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아킴·리잔느 부부
"더 늦기 전에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세요. 당신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당신이 정말 아이의 부모가 되고 싶다면요" -스웨덴 라떼파파 요아킴

【파이낸셜뉴스 스톡홀름(스웨덴)=박소현 기자】 "둘째랑 어제 점프 키즈카페에 가서 한 시간 뛰다 왔어요." 요아킴 야콥손(39세)은 기자와 인터뷰를 하기 전 주말에 첫째 딸 올리비아(7) 친구의 생일파티를 다녀왔다. 요아킴은 당시 생일파티가 끝난 뒤에도 약 1시간을 올리비아와 놀았다. 그때 감기에 걸려서 올리비아와 함께 파티에 가지 못해 아쉬워하는 작은 딸 엘사(4)만을 위해 그는 평일 저녁에 기꺼이 시간을 낸 것이다.

아이가 서운해한다고 평일에 일찍 퇴근해서 키즈카페를 가는 건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스웨덴 라떼파파(Latte papa)' 요아킴은 달랐다.
라떼파파는 커피를 손에 들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를 뜻한다. 스웨덴에서 유래했다.

그는 육아에 '진심'인 아빠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면 해가 진 뒤라도 집 밖으로 나가 신나게 썰매를 끌어주고 야외에서 아이 눈높이에 맞춰 몸으로 놀아준다. 그는 주말에 몰리는 아이 친구와의 생일파티는 물론, 아빠가 직접 참여하는 토요일 오전 운동 수업, 일요일 오후에는 댄스클럽에도 두 딸을 데리고 간다. 이렇게 아이와 항상 주말을 보낸다면 그의 평범한 어느 하루의 오후와 저녁은 어떨지 궁금했다.

요아킴에게 '진짜 라떼파파의 일상과 육아 철학 등을 공유해 줄 수 있냐'고 동행 취재를 요청했다. 그는 "라떼파파라는 말을 들어보긴 했는데 정말 재밌는 말"이라면서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했다. 또 선뜻 자신의 집에서 두 딸과의 일상을 보여주겠노라고 했다.

지난해 11월 30일 오후 4시. 올리비아의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학교 앞에서 요아킴을 만났다. 그의 차 트렁크를 보니 이미 저녁을 위한 장을 봐뒀다. 피곤해하는 올리비아에게 "오늘 저녁은 햄버거!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햄버거를 만들 거란다"라며 너스레를 떨면서 그가 향한 곳은 엘사가 다니는 집에서 5분 거리의 프리스쿨, 한국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합쳐진 곳이다. 큰 창문으로 아빠를 본 엘사가 함박미소를 지으며 뛰어왔다. 그는 스웨덴 아이들이 겨울에 주로 입는 스노수트 보관함에서 엘사 옷을 한눈에 찾아 입히고 두 딸과 함께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중학교 수학·체육 교사인 그는 아내보다 빨리 퇴근할 수 있어 일주일에 3~4번은 두 아이를 직접 픽업한다.

그는 저녁을 위해 패티를 직접 치대면서 수제 햄버거를 만들기 시작했다. 요리 중에 두 아이가 싸우자 얼른 달려가서 자초지종을 듣고 "다 함께 즐겁게 놀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훈육했다. 두 아이는 주방에 와서 햄버거 번을 굽고 포크, 유리잔을 놓는 등 아빠를 도왔다. 저녁 식사를 일주일에 몇 번이나 준비하냐고 물었더니 "4번"이라는 놀라운 답이 돌아왔다. 아이를 돌보는 동시에 요리를 하면서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그를 보니 떠오르는 단어는 '능숙함'이다. 그는 한 손에 라떼를 마시면서 어린 아기가 탄 유모차를 끄는 라떼파파보다 한 차원 높은 '육아 만렙'의 경지에 있었다.

지난 2019년 6월 딸 엘사를 안고 있는 요아킴 야콥손. 엘사는 현재 네살이다.
지난 2019년 6월 딸 엘사를 안고 있는 요아킴 야콥손. 엘사는 현재 네살이다.

■조부모·시터육아 없는 스웨덴

요아킴, 리잔느 부부는 오전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출근해서 4시 반에서 6시 사이에 퇴근한다. 한국에서 맞벌이 부부라면 조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시터를 고용하지만 스웨덴에서는 두 경우 모두 드물다. 요아킴은 "조부모가 근처에 살아도 손주를 보러 오는 것이지 스웨덴에는 조부모 육아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부모가 없는 경우 한국에서는 누가 아이를 돌보냐"며 반문했다.

스웨덴에서는 '부부가 아이를 직접 키운다'는 문화로 서서히 바뀌었다. 부부 모두 매년 3회, 아이가 만 12세까지 사용할 수 있는 육아휴직, 아이가 아플 때 집에서 연 120일까지 휴가를 내고 돌볼 수 있는 VAB(Vard av barn·아픈 자녀 돌보기) 등 제도가 수십 년 동안 정착되면서다.

요아킴도 올해 올리비아와 엘사가 아플 때 총 15일의 VAB를 쓰면서 아픈 아이를 직접 돌봤다. 요아킴은 "적어도 내 주위 친구들도 아빠는 다 집에 머물러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서 "지금 당장은 가족과 일이 우선해야 하는 시기다. 같은 또래의 자녀를 둔 다른 가족과 주로 만난다"고 말했다. 일과 가정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함께 육아휴직 중인 요아킴(왼쪽 첫번째)과 친구들이 지난 2017년 4월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공원에서 유모차 산책을 하고 있다. 요아킴 야콥손 제공
함께 육아휴직 중인 요아킴(왼쪽 첫번째)과 친구들이 지난 2017년 4월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공원에서 유모차 산책을 하고 있다. 요아킴 야콥손 제공

■육아휴직 8개월… 친구 셋과 공동육아

요아킴은 아빠 육아휴직을 얼마나 사용했을지 궁금했다. 지난 1995년부터 아빠의 육아휴직을 최소 3개월로 의무화했지만 스웨덴에서도 여전히 엄마가 아빠보다 훨씬 길게 육아휴직을 쓰는 경향이 있다.

요아킴은 "올리비아와 엘사 모두 각각 8개월씩 썼다"면서 "올리비아의 육아휴직 때 내 부모님, 리잔느 부모님과 함께 태국에 한 달 동안 놀러갔는데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첫째 딸과 같이 신문을 읽는 사진, 공원에 간 사진, 집안에서 목마를 태우는 사진 등 사진첩의 빼곡한 사진을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낸 것은 나에게 최고의 기억"이라면서 "아이가 처음 걸었을 때, 새로운 것을 탐험할 때 그 처음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최고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02년 스웨덴 군대에서 함께 근무한 친한 친구 셋이서 같이 공동 육아를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친구 셋이 같이 육아휴직을 썼다"면서 "엄마들이 하는 것처럼 같이 공원에 가고 아이가 자면 유모차 산책도 같이 했다"고 웃었다. 아이가 잠들면 툴레(유모차의 일종)에 태워 일주일에 세 번 1시간씩 뛰기도 했다.

■아무리 바빠도 육아는 부모 의무

요아킴은 이날 인터뷰 내내 '평등'이라는 말도 정말 많이 썼다. 그는 우선 같은 돈을 벌면 같은 육아, 가정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아킴·리잔느 부부는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만큼 육아와 가정일을 평등하게 나누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더할 때도 있고 리잔느가 더 할 때도 있지만 우리는 평등하게 나눈다"면서 "더 젊은 세대는 더 평등하게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빠가 돈을 많이 버는 대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더라도 육아는 부모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육아가 의무라는 것은 일상생활에 참여하고 모든 육아에 관여하는 것"이라면서 "한 부모가 다른 부모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해서 가족생활의 균형이 바뀔 수 있더라도 양육은 평등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회사일에 치여 육아 참여도가 낮은 한국 아빠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더 늦기 전에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세요. 당신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당신이 정말 아이의 부모가 되고 싶다면요."
gogosing@fnnews.com 박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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