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는 9일 브로드컴과 협의를 거쳐 마련한 잠정 동의의결안을 공개하면서 의견 수렴 절차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동의의결은 공정위 조사·심의를 받는 사업자가 스스로 피해 구제 등 타당한 시정 방안을 제시하면 위법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신속히 종결하는 제도다.
브로드컴은 삼성전자에 스마트폰 핵심 부품을 판매하면서 우월한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3년간의 장기계약을 강요한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았다. 브로드컴의 부품을 매년 7억6000만달러(약 9454억원) 이상 구매하고, 미달하면 차액을 배상한다는 게 계약 내용이었다. 삼성전자의 계약 선택권을 제한하고 경쟁업체의 진입을 막은 셈이다. 갤럭시 Z플립3, 갤럭시 S22 등 지난해 3월 이전 출시된 스마트기기에 브로드컴의 관련 부품이 들어있다.
공정위는 거래상지위남용 혐의로 브로드컴을 조사했고, 브로드컴은 자발적으로 동의의결 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8월 이를 받아들여 브로드컴과 협의를 진행해 잠정 동의의결안을 마련했다.
잠정 동의의결안에서 브로드컴은 반도체 분야 상생을 위한 기금 200억원을 조성하고 향후 5년간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77억원), 중소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 기업 창업·성장 지원(123억원)에 쓰이도록 하겠다고 제안했다. 반도체 인재양성센터(가칭)를 설립해 매년 150명씩 총 750명의 국내 대학생·대학원생, 재직자에게 2주∼2달 안팎의 반도체 데이터 수집·분석 또는 차량용 반도체 설계 교육을 제공하고, 중소 팹리스 기업을 위한 창업 지원 인프라와 검증·테스트 환경 구축을 5년간 지원하는 내용이다. 세부 계획 수립과 집행 업무는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자율적·독립적으로 맡도록 했다.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장기계약 기간(2020년 3월∼2021년 7월)에 주문이 이뤄진 브로드컴 부품에 대해 3년간 품질 보증과 기술지원을 제공하고, 삼성전자의 부품 주문 및 기술지원 요청에 대해 유사한 상황의 다른 거래 상대방과 같은 수준으로 응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브로드컴은 국내 스마트기기 제조사에 부품 선적·구매주문 승인·기술지원·생산을 중단하는 등 불공정한 방법으로 부품 공급계약 체결을 강제하지 않고, 부품 선택권을 제한하지 않으며, 자신의 경쟁 사업자와 거래하지 않도록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의 장기계약 기간 브로드컴의 관련 매출액은 7억달러를 조금 웃돈다. 달러당 1200원으로 계산하면 한화 약 8400억원이다.
심재식 공정위 제조업감시과장은 "이번 사건에 관련된 매출액이 약 7억5000만달러인데 관련법상 과징금 규모는 (매출액의) 최대 2%"라며 "동의의결 말고 정식 심의절차를 진행했을 때 나오는 금액(과징금)은 충분히 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피해 규모를 정확히 추산하기 곤란하지만, (200억원의 상생기금은) 최대한 부과할 수 있는 과징금을 확실히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앞서 네이버(2014년·1000억원)와 애플(2021년·1000억원) 등이 동의의결 제도를 통해 상생기금을 조성한 바 있다.
공정위는 10일부터 내달 18일까지 이해관계인과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계부처의 의견을 수렴한 뒤 이를 반영해 최종 동의의결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imne@fnnews.com 홍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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