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CJ대한통운의 택배 노조 단체 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로 산업계 후폭풍이 우려된다. 가뜩이나 강성 노조의 위세로 잠잠한 날 없는 현장이 더 격한 대결의 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12일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을 기각했다. 지난해 7월 나왔던 중앙노동위 판정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법원은 노동법상 사용자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정했고 원청의 의무도 넓게 다뤘다.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앞서 중노위는 CJ대한통운 손을 들어준 지방노동위원회 판정을 뒤집어 파장을 일으켰다. "원청 사용자가 하청 근로자의 노동조건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부분에는 원청의 단체교섭 당사자 지위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게 요지였다. CJ는 바로 행정소송을 냈고, 법원에서 바로 잡힐 것으로 기대했으나 물거품이 됐다.
택배기사들은 택배사 하청업체인 집배점(대리점)에 노무를 제공하는 특수고용직에 속한다. 기사들은 계약을 하청 대리점과 한다. 원청업체인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과 명시적 근로계약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 현행 노동조합법(제81조)은 사용자가 노조의 단체교섭을 이유없이 거부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정한다. 여기서 사용자는 '근로자와 명시적, 묵시적 근로관계를 맺은 자'라는 게 대법원 판례였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CJ대한통운이 단체 교섭에 응할 의무는 없으나, 이번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사용자 범위를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봤다.
하청 노조와의 교섭 의무를 두고 벌어진 소송에서 원청이 패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년 전 비슷한 쟁점으로 금속노조가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적 있으나 1·2심에서 노조가 패소했다. 지금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향후 원청 교섭권 보장을 요구하는 하청노조의 줄소송이 현실화될 수 있다. 하청 업체를 두고 있는 모든 원청 사업자들이 단체교섭에 나서야 하는 대혼란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산업의 원·하청 생태계 붕괴로 이어져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제계 우려가 지나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이번 판결은 파견근로자법, 하도급법 등 기존 법률과 충돌하는 지점도 있다. 파견근로자법은 원청의 하청 직접 지휘를 불법으로 규정한다. 대리점 등 협력사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은 하도급법 위반이다. 상급심에서 이를 반영한 합리적 결정이 나올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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