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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공부삼아 시작한 일기쓰기… 그 여정은 '끝없는 반성과 성찰' ['장수 박사' 박상철의 홀리 에이징]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4.28 04:00

수정 2023.04.28 04:00

(21) 백세인이 일기를 쓰는 이유
日서 태어나 해방전후 시대를 겪으며 일상을 꼬박꼬박 기록해온 황경춘옹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물었더니 "그저 국어를 더 잘하고 싶었다" 고백
"이제 죽어서야 이 일과가 멈추겠지요"
노인은 오늘도 배움으로 내일을 연다
한글공부삼아 시작한 일기쓰기… 그 여정은 '끝없는 반성과 성찰' ['장수 박사' 박상철의 홀리 에이징]
일기란 개인의 기록일 뿐 아니라 반성을 통해 내일의 개선을 추구하는 미래 지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일기란 개인의 기록일 뿐 아니라 반성을 통해 내일의 개선을 추구하는 미래 지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글공부삼아 시작한 일기쓰기… 그 여정은 '끝없는 반성과 성찰' ['장수 박사' 박상철의 홀리 에이징]
증자(曾子)는 공자의 적통제자로 '효경(孝經)'을 저술하였으며, 유학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논어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일일삼성(一日三省)한다는 내용의 증자의 말씀은 인구에 널리 회자되는 명구이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 일로 나 자신을 반성하니, 남을 위하여 일을 꾀하면서 진심을 다하지 않았는가, 벗과 사귀면서 진실하지 않았는가, 배운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이다(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라는 증자의 말씀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진심(忠), 성실(信). 학문수련(傳習) 세가지를 매일매일 점검하고 되새기면서 삶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면 올바른 세상이 이루어진다는 가르침이다. 이러한 일일삼성의 정신은 우리 전통사회에 생활의 지침이 되었으며 후세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하루하루 삶을 반성하면서 산다는 것은 오늘의 잘못을 더 이상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며 보다 나은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기초작업이다.
이러한 반성과 개선의 삶을 구체화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일기를 쓰는 일이다. 일기란 개인의 일상생활 기록일 뿐 아니라 반성을 통해 내일의 개선을 추구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일기를 쓰는 일은 발전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성장하는 어린이들에게 으레 매일매일 일기 쓰기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반성하고 발전을 기하라는 염원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조의 일성록(日省錄),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亂中日記)와 같이 격동하는 역사의 핵심에 있는 분들의 일기도 있지만 일반 개인들에게도 일기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대부분 일기는 젊은이들의 기록이지 나이가 들어서서도 열심히 일기를 쓰는 사람은 흔하지 못하다. 아마도 일상 생활의 삶에서 반성할 필요도 없어지고 내일을 위하여 새롭게 준비하려는 꿈도 없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지레 걱정해본다. 그러나 100살이 되어서도 이러한 일기를 쓰고 있는 백세인이 있다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어 찾아 나섰다.

내 지인이 참여하여 보내주는 인터넷 '자유컬럼'에 어느 날 "백세에 '일기쓰기'의 의미"라는 제하의 컬럼이 실렸다. 눈길이 가서 바로 읽어 보게 되었다. 컬럼의 내용은 "막상 제가 100세 노인이 되고 나니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참으로 이상한 기분입니다. 100세가 되었다 해도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지 않은가, 하고 자기를 돌아보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닌 요즘의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 새로운 고민입니다. 요즘 이 100세 노인의 중요한 일과 하나가 침대에 들어가기 전 꼭 쓰는 일기입니다"라면서 글을 이어 갔다.

우선 백세인이 칼럼을 쓰고 있다는 사실만도 놀라운 일인데, 백살이 되어서도 일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크게 느껴 어렵사리 연락을 취하여 면담하게 되었다. 작은 따님과 살고 있어 댁에서 가까운 호텔 라운지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휠체어에 앉은 점잖은 분이 따님과 함께 나왔다. 그 분은 황경춘옹이었다.

황옹은 일정치하에서 일본에서 태어나서 초, 중, 고 및 대학을 일본에서 다녔고 해방 후 귀국하여 미군부대에 통역으로 일하게 된 인연으로 미대사관에도 근무하고 AP통신사의 한국 지국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전직 외신기자로 우리나라의 정치적 격변기의 사정을 해외에 주도적으로 맨처음 알리는 역할을 하여왔다. 황옹은 어린 시절부터 일기를 쭉 써왔으며, 군대복무와 같은 특수 상황이 아닌 한 끊임없이 일기를 써왔다고 하였다.

해방 후에는 남이 알아보지 못하게 일기를 영어로 또는 에스페란토(Esperanto)로 쓰기도 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군사정부가 들어서서 보안검열이 심해지고, 더욱 5.18 광주사태로 구금되었을 때 수사관들이 수시로 메모지와 일기를 뒤지는 것을 보고 한동안 일기를 쓸 수 없었다고 하였다. 정치적 핍박으로 결국 개인의 생활도 큰 변화를 겪은 시절이었다. 그러나 회사를 정년퇴직하고 나서부터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하였고, 이후 백살이 된 지금까지 계속 일기를 써오고 있었다.

따님이 가져온 몇 권의 대학노트에는 일상의 삶이 볼팬으로 꼬박꼬박 기록되어 있었다. 자신의 겪은 지난날의 기억이며, 자식들의 방문과 가족들의 애환이 구체적으로 나열되었고 그러한 상황에서 본인이 느끼는 감정의 기복을 진솔하게 기록하였다. 개인적으로 몇 년전 부인을 상처한 외로움과 만성신기능부전을 앓게 되어 신장투석을 하게 된 안타까운 심정들에 대해서도 꼭꼭 손으로 눌러 일기를 써왔다.

일기는 일상의 삶과 감정에 대한 기록임과 동시에 반성을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백살이 되어서도 그러한 반성의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알고 싶었다. 그래서 황옹에게 일기를 계속 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물었다. 그런데 뜻밖의 답을 들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일제치하에서 교육받았고 한번도 대한민국 교육기관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외신기자로 재직하면서 영어로 기사를 쓰고 보내는 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지만 한글로 기사를 쓸 때마다 항상 어려움을 느껴왔다고 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한글을 개선하기 위해서 일기를 쓰기 시작하였다는 고백이었다. 자신이 부족한 한글을 보완하기 위해 일기를 선택하여 매일 한글을 연습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백살이 넘었어도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쉼없이 노력하는 진지한 모습이 시사하는 바는 너무도 거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리를 가려는 자는 구십리에 이르렀을 때 절반쯤 왔다고 생각해야 한다 (行百里者 半於九十)"라는 옛글처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되새기게 한다.

백세인 황옹은 칼럼의 마지막 귀절을 다음과 같이 매듭지었다. "이젠 다른 의미로 나의 일기 쓰기는 여생을 뜻있게 보내는 중요한 일과(日課)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 일과는 죽음만이 중단할 수 있는 일거리가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나의 삶을 깊이 반성하는 값진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를 어찌 소홀히 하겠습니까" 백살 넘어서서도 끝없는 노력으로 생명이 다할 때까지 매일매일 배움을 더하고 반성하면서 새로운 내일을 기약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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