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반도체 세계 1등' 대만도 토종 플랫폼 육성하는데... 한국은 뒷걸음질

정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6.27 14:58

수정 2023.06.27 14:58

[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TV 제공]


[파이낸셜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온라인 플랫폼 산업을 규제하는 입법안을 강행할 움직임에 대해 업계와 학계에서 잇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정위는 유럽연합(EU)에서 플랫폼 규제법을 들여와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대형 플랫폼을 사전에 지정해 규제하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경쟁 제한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글로벌 리딩 기업 성장을 가로 막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최근 글로벌 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독보적 1위를 달리는 대만 TSMC의 성장 비결이 대만 당국의 규제 완화에서 비롯된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공정위가 그와 반대되는 행보를 걷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대만의 TSMC는 지난 3월 기준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58.5%를 차지하며 2위인 삼성전자(15.8%)와 격차를 더 벌렸다. 대만 TSMC의 반도체 매출은 지난 2018년만 해도 삼성 반도체 매출(86.2조원)의 절반인 42조1000억원 기록했지만, 지난해 3·4분기엔 2분기 연속 삼성을 뛰어넘으며 세계 파운드리 1위에 올랐고 올해엔 삼성을 연 매출로 넘을 것으로 보인다.

TSMC의 1위 질주는 대만 당국의 규제 완화 덕분이다. 대만 경쟁당국은 지난 2000년 TSMC가 현지 경쟁사인 파운드리 업체 TASMC와 WSMC를 흡수합병하는 것을 승인했고, 그 결과 TSMC의 국내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53%에서 60%로 상승한 것. 대만 정부의 규제 완화가 대만 현지 시장점유율이 50%가 넘는 상황에서도 추가 경쟁업체 합병 인수로 글로벌 시장으로 진격할 체력을 키우는데 결정적인 '밑거름' 역할을 한 셈이다.
국내 산업계 한 관계자도 "국가 경제를 견인하는 핵심 미래 먹거리 산업이라면 성장을 적극 독려해 글로벌 1등을 만들어낸 사례"라고 말했다.

반도체 신화를 만든 대만 정부는 최근 자국의 IoT, AI, 디지털 플랫폼 같은 미래 먹거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디지털 플랫폼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만 TFTC의 앤디 첸(Chen) 부위원장은 지난 23일 한국경쟁법학회 주관 세미나에서 "대만은 현재까지 디지털 플랫폼 경쟁에 관한 그 어떤 입법안이나 행정 가이드라인도 없으며, EU의 규제법과 유사한 규제 입법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 공정위는 유럽연합(EU)이 지난 5월 도입한 온라인 플랫폼 규제법인 '디지털시장법'(DMA)을 벤치마킹해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온라인 플랫폼을 지정해 규제하는 입법안을 추진 중이다. 온플법은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대형 플랫폼을 사전에 지정해 규제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지난 1월부터 독과점 규율 개선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플랫폼 독과점 규제 개선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다. 조만간 법 제개정 여부 등을 포함한 규제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EU의 DMA는 유럽 내 3개국 이상 진출·4500만명 이상의 실사용자를 가진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 등 미국 기업의 독과점을 견제하기 위한 '유럽식 장치'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지만 이 유럽의 디지털시장법을 국내에 도입하겠다는 것이라 부작용이 예상된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자사 서비스 할인, 서비스 추가 제공 등 사실상 플랫폼 기업의 주요 서비스들이 모두 사전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업계와 학계에선 "반도체에 이어 플랫폼 산업도 대만에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현재 대만에선 쇼핑 플랫폼 모모(Momo), OTT플랫폼 '캐치플레이'(Catchplay) 등 여러 토종 플랫폼들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주요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이수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한국의 토종 플랫폼들이 글로벌 사업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규제를 하다 이들 사업자들이 그 지위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wonder@fnnews.com 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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