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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다리에 힘이 없던 노인이 〇〇을 많이 먹자 걷게 되었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9.23 06:00

수정 2023.09.23 19:50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본초강목>에 그려진 율(栗, 밤)(왼쪽)과 가을 밤나무에서 다 익어서 저절로 떨어진 생밤의 모습
<본초강목> 에 그려진 율(栗, 밤)(왼쪽)과 가을 밤나무에서 다 익어서 저절로 떨어진 생밤의 모습


옛날 어느 마을에 60대 고령의 노인이 있었다. 이 노인은 허리와 다리에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지팡이가 있어도 다리에 힘이 없으니 걷는 것은 무척 힘이 들었고, 지팡이는 그저 넘어지지 않을 정도의 도움뿐이었다.

때는 가을이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가을이 되자 노인은 지팡이 없이 걷는 날이 많았다.
더욱더 이상한 것은 노인이 산에만 갔다 오면 며칠 동안 지팡이를 짚지 않는 것이다. 며칠에 한번씩 반복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산속에 도사나 용한 의원이 있나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 마을 사람 몇 명이서 노인을 몰래 따라가 보자고 했다.

어느 날도 노인은 아침이 되자 지팡이를 짚고 산 쪽으로 향했다. 노인은 산속에 들어가더니 어느 큰 나무 아래에 있는 너럭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러고서는 바닥에서 뭔가를 주워서 껍질을 벗겨내더니 씹어 먹는 것이다. 무엇을 먹는 것인지 멀리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이 밤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밤인 것이 분명했다.

노인은 바닥에 떨어진 밤송이들을 수십 개를 까먹고 나더니 구부정한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똑바로 서서 지팡이까지 놓아두고 밤나무 주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미 떨어진 밤을 찾아 까먹고 중간에 저절로 떨어진 밤이 있으면 또 까먹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노인이 까먹은 생밤의 양이 거의 두어되 정도 되는 듯 했다. 가만보니 노인이 생밤을 먹는 양이 늘수록 다리에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뒤쫓아온 마을 사람들은 궁금증을 참지 못해 노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르신, 밤을 먹어서 다리에 힘이 생긴 것입니까? 그렇다면 밤을 먹으면 다리에 힘이 나는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하고 물었다.

노인은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한 10여년 전에 마을 뒷산으로 버섯을 캐러 산속에 들어왔다가 갑자기 길을 잃었던 적이 있지 않았는가. 그때 내가 없어졌다고 마을사람들이 나를 찾으러 돌아다니기도 했지. 그런데 길을 잃어 하루 종일 산속을 헤매다가 우연히 밤나무 아래에서 쉬게 되었네. 그때도 다리에 힘이 없기도 했지만 그래도 지팡이는 없이 돌아다닐 정도였지. 나는 산속을 헤맨 통에 배가 고파 땅에 떨어진 밤들을 모두 까서 먹었다네. 그러고 나서는 밤이 깊어 어쩔 수 없이 밤나무 아래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일어나보니 평상시와 달리 다리에 힘이 생겨 있어서 놀랐네. 나는 그때만 해도 그것이 밤때문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네.”하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노인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노인은 이어서 “그런데 그때 일을 잊고 지내다가 몇 년 전부터 내가 다리에 힘이 빠져서 지팡이를 짚게 되었는데, 의원들도 찾아가 봤지만 모두들 늙어서 그렇다고들만 하니 갑갑했었네. 그런데 갑자기 옛날 일이 생각나서 다시 밤을 먹어볼까 하고 한번 먹어봤더니 다리에 힘이 생겨서 깜짝 놀랐네. 그래서 가을만 되면 뒷산으로 가서 이렇게 밤을 까먹고 있는 것이네.”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을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밤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들어봤지만 노인의 말처럼 다리에 힘이 들어오게 한다는 것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노인을 뒤쫓아간 마을 사람들 중에는 집에 고령의 아버님을 모시는 사내가 있었다. 그래서 그 사내는 집에 있는 거동이 불편한 아버님께 자신도 밤을 좀 드려야겠다고 밤나무에 있는 밤을 많이 따서 집으로 가져갔다.

사내는 밤을 깨끗한 물로 정성스럽게 씻어서 솥에 넣고 쪄냈다. 그렇게 해서 찐 밤을 아버지께 드리자 아버지는 맛있다고 하면서 잘 드셨다. 그래서 며칠을 계속해서 찐 밤을 드시게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왜 갑자기 나에게 밤을 이렇게 많이 쪄 주는 것이냐? 쌀이 없는게냐?”하고 으아해하면서 물었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함은 여전했고, 심지어 체기가 있어서 더 못 먹겠다고 했다. 사내는 ‘그럼 그렇지 밤이 그런 효과가 있을 리가 없지.’라고 생각했다.

사내는 아버님을 모시고 인근 약방을 찾아서 침이라도 맞게 해 드려야겠다고 하면서 약방으로 갔다. 사내는 의원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면서 그 산속의 노인의 괜한 말에 속아서 분하다고 말을 꺼냈다.

의원은 사내의 아버지에게 침을 놓고 나서 껄껄껄 웃으면서 “그 노인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요. 만약 찐 밤이 아니라 생밤으로 드시게 했다면 아버님의 다리에 힘이 조금이라도 들어왔을 것이요. 밤은 신(腎)을 보하는 효과가 커서 허리와 다리에 힘이 생기게 하는 효과가 있소. 의서에도 신허(腎虛)로 허리와 다리가 무력한 증상을 치료할 때는 생밤을 자루에 담고 매달아 두어 말린 다음 아침마다 10~20개씩 먹으면 분명히 효과가 나타난다고 했소이다. 그런데 생밤이 약이 되는 것이요. 치아가 안 좋아서 잘 씹어 먹지 못하는 경우는 생밤으로 죽을 끓여 살짝만 익혀 드시게 해도 좋겠소.”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럼 아버님께 생밤만 드려야 합니까?”하고 물었다. 의원은 “생밤도 좋고 바람이나 햇볕에 말린 밤도 좋소. 밤을 약으로 쓰고 싶다면 생밤이나 생밤을 말린 건율(乾栗)이 아니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소이다. 생밤이 많다면 모래 속에 파묻어 보관해 놓으면 다음 해 늦은 봄이나 초여름이 되어도 마치 갓 딴 것 같소이다. 아버님이 찐 밤을 먹고서 체기가 있다고 하는 것은 찐 밤이 기운을 막히게 하기 때문이었던 것이요. 밤을 익혀 먹고자 한다면 쪄서 먹는 것보다는 차라리 불에 구워서 먹는 것이 좋은데, 이때 완전하게 익히지 않고 절반 정도만 익도록 해서 먹는 것이 기운을 체하게 하지 않고 효과가 유지될 것이요.”라고 했다.

그때 침을 맞고 있던 사내의 아버지가 간간이 기침을 했다. 얼굴을 가만 보니 그날따라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다. 의원은 “그리고 밤을 깎고 나서 남은 속껍질은 말려 두었다가 차로 마시면 기침에도 좋고 설사를 멎게 하는 효과가 있소. 또한 가루를 내서 꿀에 버무려 피부에 바르면 피부가 잘 수축하니 노인의 얼굴주름이 펴지게 하니 아버님께 그렇게 해 주시구려.”라고 당부했다.

사내는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와서 생밤을 깎아서 하루에 10~20개 정도씩 드렸다. 깎아 놓은 밤이 말라서 딱딱해지면 하룻밤 찬물에 담가 놓았다가 눅눅해지면 다음 날 아침에 천천히 씹어 드시게 했다. 생밤을 지겨워 하시면 간혹 잿불에 곁만 살짝 익혀서 구워 드렸다.

그랬더니 정말 사내의 아버지는 허리와 다리에 힘이 생기면서 관절에 나타나는 통증도 줄어들었다. 항상 누워만 계시던 분이 마당에 나와 마당에 떨어진 낙엽도 쓸었다. 항상 속이 불편하고 시도 때도 없이 허기가 졌는데, 장도 편해지고 밥을 먹지 않아도 때가 되어도 배고픔이 심하게 나타나지도 않았다. 찐 밤을 먹으면서 나타나는 체기도 없었다.

의원의 말대로 밤을 깎고 나서 남은 속껍질은 곱게 갈아서 쌀뜨물과 함께 섞어 얼굴에 발라드렸더니 칙칙한 피부가 밝아지고 잔주름이 펴지면서 고와졌다. 가정형편이 못되어 꿀이 없었기 때문에 대신 쌀뜨물에 개어 사용했는데, 쌀뜨물도 효과적이었다. 쌀뜨물도 그렇고 현미를 백미로 도정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미강도 미백효과가 있다.

남자는 별것 아닌 밤 때문에 느지막하게 아버님의 건강을 챙기게 되어 효자라는 말까지 들었다. 밤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실제로 밤에는 티아민이라는 비타민B1이 풍부한데, 티아민이 부족해지면 각기병이 생겨 다리에 힘이 빠진다. 게다가 티아민은 열에 약해 열을 가하는 조리를 하면 쉽게 손실된다. 아무리 좋은 식품이라도 먹는 방법에 따라서 효능이 달라지는 법이다.

*제목의 〇〇은 ‘생밤’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본초강목> 〇 弘景曰, 傳有人患腰脚弱, 往栗樹下食數升, 便能起行. 此是補腎之義, 然應生啖. (도홍경은 “허리와 다리가 약해지는 증상을 앓는 어떤 사람이 밤나무 아래에 가서 밤을 몇 되 먹자 일어나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것은 신을 보해 준다는 뜻인데, 생 것을 먹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〇 經驗方, 治腎虛腰脚無力, 以袋盛生栗懸乾, 每旦吃十餘顆, 次吃豬腎粥助之, 久必强健. (경험후방에서는 ‘신허로 허리와 다리가 무력한 증상을 치료할 때는, 생밤을 자루에 담고 매달아 두어 말린 다음 아침마다 10여 알씩 먹는다. 그 다음 돼지 콩팥을 넣고 쑨 죽을 먹어 보조해 주는데, 오래 먹으면 반드시 건강해진다.’라고 하였다.)
〇 按蘇子由詩云, 老去自添腰脚病, 山翁服栗舊傳方. 客來爲說晨興晩, 三咽徐收白玉漿. 此得食栗之訣也. (소자유의 시에서는 ‘늙어가니 저절로 허리와 다리에 병이 더해지자, 산에 사는 노인네 옛날부터 전해지는 방법대로 밤을 복용한다네. 어떤 객이 와서 새벽과 저녁에 세 번 씹어 천천히 침과 함께 삼키라고 알려 주었다네.’라고 하였다. 이것은 밤을 먹는 비결을 얻은 것이다.)
〇 栗子粥. 補腎氣, 益腰脚. (밤죽. 신기를 보해 주고, 허리와 다리에 유익하다.)
<동의보감> 〇 栗子. 性溫, 味醎, 無毒. 益氣, 厚腸胃, 補腎氣, 令人耐飢. 果中, 栗最有益. 欲乾莫如暴. 欲生收, 莫如潤沙中藏, 至春末夏初, 尙如初採摘. 生栗, 可於熱灰中, 煨令汁出, 食之良. 不得通熟. 熟則壅氣, 生則發氣, 故火煨, 殺其木氣耳. (밤.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짜며 독이 없다. 기를 보하고 장위를 두텁게 하며, 신기를 보하고 배고프지 않게 한다. 과일 중에서 밤이 제일 유익하다. 말리려면 볕에 말리는 것이 좋고, 생것으로 보관하려면 젖은 모래 속에 보관하는 것이 좋으니 다음 해 늦은 봄이나 초여름이 되어도 마치 갓 딴 것 같다. 생밤을 뜨거운 잿불 속에 묻어 진이 나올 정도로 구워 먹으면 좋다, 다만 속까지 완전히 익히면 안 된다.
익힌 밤은 기를 막히게 하고 생밤은 기를 동하게 하니 잿불에 구워 그 목기만을 없애는 것이다.)
〇 皮. 名扶, 卽栗子上皮也. 和蜜塗人, 令急縮, 可展老人面皮皺. (밤껍질. 부라고 하니 밤알의 껍질이다.
꿀에 버무려 피부에 바르면 피부가 잘 수축하니 노인의 얼굴주름을 펼 수 있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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