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숨진 70대 아버지의 사망 신고를 하지 않은 채 1년 넘게 냉동고에 시신을 보관하다 자수한 아들이 아버지 대신 수십억 원대 이혼 소송을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해 9월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가 숨진 것을 확인했지만 곧바로 신고하지 않은 혐의(사체은닉)를 받는 40대 아들 A씨가 아버지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재산상 불이익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시신을 보관했을 가능성 등을 수사 중이다.
경찰 등에 따르면 숨진 A씨의 아버지는 2022년 7월 배우자이자 A씨의 의붓어머니를 상대로 이혼을 비롯해 수십억 원대의 재산분할 소송을 제기했고, 올 4월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됐다.
경찰은 A씨가 아버지의 사망 시점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9월 아버지를 대신해 이혼 소송을 진행한 정황을 포착했다.
A씨는 의붓어머니 B씨가 아버지를 만나게 해달라고 하자 아버지가 살아있는 것처럼 문자 메시지를 보내 수차례 약속을 잡았다 취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혼 소송 당시 A씨의 아버지를 대리했던 변호사도 "A씨가 여러 핑계를 대며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게 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은 당사자가 숨진 이후에도 이혼 소송이 진행된 것에 대해 "이혼소송은 당사자들의 대리인이 정상적으로 선임됐다면 생존 여부까지 직권으로 확인하지는 않는다"며 "법원으로서는 A씨의 상태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1년 2개월간 사체 은닉
한편 A씨는 사체은닉 혐의로 불구속 입건돼 조사받고 있다. A씨는 지난해 9월 혼자 사는 아버지의 집을 찾았다가 아버지가 숨진 것을 확인했으나, 사망 신고를 늦춰야 할 필요성이 있어 범행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A씨는 지난 1일 변호사와 함께 경찰서를 찾아 자수할 때까지 1년 2개월여간 아버지의 시신을 비닐에 감싸 집 안 김치냉장고에 넣어 보관해왔다.
A씨 아버지는 사망 1년 후인 지난달에서야 친척에 의해 실종 신고가 접수된 상태였고, 경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A씨는 아내와 상의 끝에 자수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A씨는 지난해 11월 인터넷으로 대형 비닐 봉투를 구매한 기록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아버지 시신을 담기 위해 비닐 봉투를 구매했지만, 크기가 작아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의 진술 등을 바탕으로 아버지가 지난해 9월 숨진 것으로 추정했는데, 지난해 11월에 시신을 은닉하기 위한 봉투를 구매한 점에 의구심을 품고 아버지의 정확한 사망 시점을 조사하고 있다.
국과수 "타살 흔적은 없어"
이런 가운데 A씨의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인에 이를 만한 외력 손상(두개골 골절 및 장기 손상 등)은 확인되지 않으며, 신체 타박상 등은 식별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부검 결과를 경찰에 전달했다.
또 심장 동맥경화가 심해 심장마비나 급성 심장사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며 심장과 신장 질환이 확인됐지만 사인으로 단정할 수 없어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는 자수를 하면서 나름의 동기를 밝히고 있다"며 "아직은 진술뿐이어서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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