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4만명과 6100명. 지난해 북촌을 찾은 관광객 수와 북촌에 살고 있는 주민의 수다. 지난 한 해 동안 주민 수의 1000배가 넘는 관광객이 북촌에 다녀갔다는 뜻이다. 북촌의 정체성은 전통 한옥과 고즈넉한 풍경이 돋보이는 '한옥마을'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해 조선시대 양반층 관료가 주로 살던 이곳은 1930~1940년대 도시형 한옥이 들어오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서울에서 주거기능을 유지한 채 한옥이 집단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점도 북촌의 가치를 더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점 때문에 북촌의 정체성은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관광객이 한옥마을을 보고자 북촌을 찾으며 대표 관광지로 자리 잡았지만 정작 주민들은 소음, 쓰레기 문제에 시달리며 몸살을 앓은 탓이다. 실제 지난 2013년 8437명이던 한옥마을 주민 수는 지난해 6108명까지 감소했다. 한때 주민들의 일상이 살아 숨 쉬던 북촌은 이제 '관광지'라는 수식어만 남은 장소가 된 셈이다. 종로구가 북촌에 '관광객 통행금지'라는 칼을 꺼내 든 것도 이 때문이다. 구는 이달 초부터 관광객 방문시간 제한정책 시범운영에 돌입했다. 북촌 일대를 주민불편 수준에 따라 구역을 나누고,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북촌로11길 일대는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출입을 제한하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제한시간에 출입하는 관광객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북촌 주민의 정주권(定住權)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이 정책으로 인해 이번엔 북촌 일대 상인들이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상인들은 통행금지 정책으로 유동인구가 줄어들면서 매출이 많게는 50% 가까이 감소했다고 토로한다. 일부 중국인 관광객 사이에선 "북촌에 가면 과태료 내야 한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고도 한다. 관광객 유입이 생계와 직결된 상인들에게 통행금지 정책은 사실상 생존권을 위협하는 조치이지만, 정책 시행 과정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됐다. 주민과 상인 모두 북촌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한 상인이 "우리도 북촌 주민 아니냐"고 한 말처럼, 상인들 역시 지역경제와 마을의 활력을 지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북촌이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던 것도 거주민과 상인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거주민 보호'와 '상권 활성화' 두 가치를 균형 있게 보장하는 방안만이 북촌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 갈림길에 선 북촌에 지금 필요한 건 통행금지와 같은 뭉툭한 대책이 아니라 더욱 섬세하고 현실적인 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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